'갑질' 반칙, 호주 '옐로 카드'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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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반칙, 호주 '옐로 카드'

2015.02.06


“화끈하게 지는 것보다 구질구질하게 이기는 게 낫잖아, 어제 경기 말이야...”

지난 1월 31일 토요일 저녁, ‘2015 호주 아시안 컵’ 결승에서 한국이 진 것에 통탄하며 길을 지나는 두 젊은 남녀의 대화입니다. 워낙 축구에 관심이 없는 데다 마침 같은 시간에 조촐하고 아담한 한 음악 명상회에 초대를 받아 갔더랬습니다. ‘그날의 축구’를 못 봤다는 뜻입니다.

경기가 도대체 어떻게 펼쳐졌길래, 어떤 아쉬움과 ‘뒤끝’이 있었길래 저런 구차한 표현까지 쓰면서 안타까워할까 궁금했습니다. ‘화끈하게 지는 것’은 뭐며, ‘구질구질하게 이기는 것’은 또 어떤 것인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기보다 반칙을 해서라도 이겼어야 한다는 뜻일까, 더구나 젊은 사람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혼란스럽고 약간 무섭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축구에 관한 얘기가 아닌데 공연히 제가 착각한 건지도 모릅니다. 가령 어떤 말 끝에 곧바로 축구 이야기가 이어진 걸 지나가던 제가 그 말을 경기 결과에 대한 소감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한 편의 구호 같은, 표어 같았던 그 표현에 저는 지금껏 ‘꽂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와 현 세태를 극명하게, 상징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말이 공공연히 돌아다니는지 인터넷 검색까지 해 봤습니다. 

과정이야 '구질스러워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니… 살다 보면 구질구질해질 때가 있습니다. 매사 당당하고 의연하고 떳떳할 수 있다면야 ‘당근’ ‘폼’나겠지만, 때로는 졸렬, 용렬해지는 순간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반사지요, 속된 말로 ‘스타일 구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도 인생의 한 변주 아닌가요. 

문제는 그런 구질구질한 상황이 내 쪽의 승리로 결론이 났을 때 십중팔구 요즘 유행하는 ‘말짝’으루다 ‘갑질’을 하기 쉽다는 거지요. 구질구질하게 이긴 것을 ‘캄푸라치’하기 위해서, 측근의 질투나 혹은 정의의 이름으로 폭로나 망신을 당할까 보아 철저히 ‘갑질’로 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현상에 ‘갑질 덤터기’를 씌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호주와 축구를 한 다음 날 그런 말을 들었으니 호주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백호주의가 폐지된 이후 호주는 250개가 넘는 나라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가치관과 관념과 의식과 문화를 가진 ‘인종 박물국’으로 변모했습니다. 

졸지에 지구촌 모델 하우스 내지는 축소판이 된 나라, 어지러이 각기 따로 노는 퍼즐 조각을 ‘섬대륙’이라는 거대한 퍼즐 판에 끼워맞춰야 하는 난제에 순간순간 봉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퍼즐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의 핵심 근간은 ‘fair and justice’입니다. 

‘fair and justice’가 ‘기준!’을 외치면 지구촌에서 모여 든 각종 인종과 민족이 그때그때 ‘헤쳐, 모여’를 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경향으로 지금은 상당히 오염되었지만 호주에서는 “fair 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치욕적이며 모욕적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갈등과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 “not fair!” 라고 외치는 순간 ‘꼬랑지를 내리는’ 모습을 지난 21년간 호주에 살면서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저는 이른바 ‘정의 사회’의 시민이었던 것입니다.  

탐욕 자본주의로 인해 퇴색되고 빛 바랬다 할지라도 ‘fair and justice’는 여전히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호주의 통치 이념입니다. 이념은 이념일 뿐이라 해도 이념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인간 정신은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관념과 이념으로 빚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갑’은 있을지언정(당연한 거 아닌가요? ‘갑을’은 관계나 계약의 용어이니)  ‘갑질’은 없는 사회, ‘갑질’을 맞닥뜨리는 순간, ‘not fair’라는 ‘옐로카드’를 코앞에 들이밀 수 있는 사회에서는 화끈하게 질 일도, 구질구질하게 이길 필요도 없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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