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이중섭미술관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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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이중섭미술관

2015.01.29


작년 말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서귀포에서 특별한 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서귀포시와 이중섭미술관이 주관한 이중섭 탄생 100주년(2016. 9. 16) 기념사업 선포식이었는데 이 자리에 필자도 초청되어 100명이 넘는 추진위원 중 하나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미술계와는 그다지 연고도 없는 필자가 이런 데 끼인다는 게 좀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평소에 화가 이중섭을 좋아하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여 온 탓이라 치고 참가하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민화가’란 이름까지 주어진,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을 모르는 사람도, 또 알면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뚝 선 예술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은 참으로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유명한 서양 예술가들의 탄생이나 서거를 기리는 행사들이 국내외에서 적지 않게 열려온 데 비해 우리 예술가의 100주년을 기리는 사례는 별로 없었기에 이런 기념행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더욱 자리 잡혀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화가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왜 서귀포시에 소재한 이중섭미술관이 주관해서 추진해야 할까요?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예술가라면 보다 큰, 전국적인 미술단체가 넓게 후원을 받아서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말은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조그만 미술관이 이런 일을 스스로 맡아 나선 것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결성에는 국내 유수한 미술평론가와 화랑 대표들도 참가한 만큼 앞으로 추진 주체를 더 크게 키워나갈 소지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대견한 것은, 아름다운 서귀포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세워진 이중섭미술관 그 자체입니다. 역시 ‘국민화가’라 할 박수근을 기념하는 미술관이 강원도 양구에 세워진 것은 고향이라는 연고 때문이지만 이중섭미술관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사실 이중섭은 6·25의 전화(戰禍)를 피해 원산을 떠나서 부산에 잠시 머문 후 서귀포로 옮겨와 1년도 채 안 살았을 뿐인데 그가 살던 작은 초가집 옆에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 서귀포시가 이중섭의 이름으로 미술관을 세웠으니 비록 그 규모나 소장품이 빈약하다 하더라도 그 뜻이 가상하고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중섭미술관이 설립 13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관광 요지인 서귀포에 있음으로 해서, 그의 이름으로 된 이 미술관은 이제 서귀포와 떼려야 뗄 수 없게끔, 빼어난 바닷가 경관과 함께 서귀포의 대표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관광객 증가와 더불어 미술관 방문객 수가 증가하고 있어, 모르긴 해도 흑자 운영을 하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공립 미술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합해 16점(은지화 8점, 유화 등 8점)의 원작과 팔레트 등 유품 약간, 그리고 별도의 기획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은 그 규모가 작아 입장료도 단돈 천원일 뿐이니 그 수입이라고 해봤자 미술관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관광객들이 서귀포에 와서 이 미술관을 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을 만큼 이중섭미술관이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전시 내용이 빈약해서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곁방처럼 붙은 1.3평의 공간에 이중섭이 가족 셋과 함께 살았던 바닷가 초가집이 복원돼 있고 그 옆에 2층 건물의 미술관이 서 있습니다. 이중섭이 그곳을 중심으로 한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미술관의 의미가 큰 만큼 이중섭을 아끼는 우리 국민은 이중섭미술관을 이름에 걸맞게 키워가는 데에 힘을 보태야 할 것입니다. 이미 계획하고 있는 화가의 원작 추가 구매를 포함하여 무엇보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미술관의 규모를 주변으로 더 확장하는 것이 매우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솔직히 초라하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바로 그런 사업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서울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 전>이 보여주고 있는 열기 또한 이중섭 탄생 100주년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이중섭은 남긴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고흐의 작품처럼  진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가 즐겨 그리던 소, 바닷게, 조개, 물고기 등 주변의 가까운 것들과 작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한 화가의 진솔하고 애틋한 사랑이 그대로 전달돼 옵니다. 이중섭은 부인 이 남덕(95, 야마모도 마사코) 여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으로 차고 넘쳐야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라고 썼는데 정말 이중섭의 모든 그림에는 사랑이 차고 넘치는 것 같습니다. 가족 간에 주고받은 편지 하나하나에 그려져 있는 작은 그림들마저도 적지 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술에 몸을 바쳐 절박한 환경을 감내하면서도 한시도 잊지 못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화가와 그런 남편을 걱정하면서 이역에서 외로운 삶을 견뎌내야 하는 아내 사이에 오고 간 서한들은 간절함과 애절함이 넘쳐납니다. 일본에서는 이중섭과 일본인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여 상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상영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좋은 소재를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도 생각해봅니다. 마침 올해가 한일 수교 50주년이므로 이런 영화 상영을 계기로 양국 국민 간에 꺼져가는 우정이 다시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한 한국인 예술가의 일본인 아내와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한일 관계에도 해빙이 오고 양국 간 서로 존중과 포용이 다시 자리 잡기를 기대해봅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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