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만들기, 스펙 꾸미기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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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만들기, 스펙 꾸미기

2015.01.28


기업이 경력 사원을 뽑을 때 가짜 ‘스펙’을 걸러내는 검증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는 보도를 엊그제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지원서나 자기소개서에 경력기간 및 연봉 속이기, 학력 및 학위 허위기재하기, 파견근로를 정규직으로 둔갑하기 등 별의별 속임수가 다 등장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거짓 스펙을 기재하면서도 죄의식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일단 채용된 후 허위가 발각되어 해고 사유가 되어도 노동법을 들이대며 버티기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니 채용 회사로서는 대단히 난감한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취업 지망생의 스트레스를 가장 심하게 유발하는 단어는 ‘스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학생 멘토 노릇을 하면서 ‘스펙’이란 말에 익숙해졌지만 10여 년 전에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영어사전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발음대로 유추해서 ‘speck'이란 단어를 들춰보니 '오점' '반점'이란 뜻밖에 없어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영어 'specification'의 한국식 줄임말이란 건 한참 사전과 인터넷을 들춘 후에야 알았습니다. 원래 물품제작의 시방서 같은 의미인데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뜻하는 말이 된 셈입니다. 

이젠 한국어 사전에도 수록된 ‘스펙’의 뜻은 ‘구직자 사이에서 학력, 학점, 자격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처럼 단순한 것 같지 않습니다. 대학생들은 완전히 스펙에 혼을 빼앗겨 버린 상태입니다. 

토익, 토익스피킹, 중국어 능력시험(HSK)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 좋은 스펙이 됩니다. 게다가 해외 언어 연수를 가는데 그것도 미국이나 영국으로 갈지, 호주나 필리핀으로 갈지도 스펙과 연관된다고 대학생들은 생각합니다. 컴퓨터 활용 자격증, 공모전 수상경력, 인턴 경험, 봉사활동 등 스펙을 쌓는 일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거기에 들이는 시간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학생활은 학문을 닦고 건전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전인교육이 아니라 공무원시험 준비로 노량진 학원을 대학만큼이나 다니고, 스펙 쌓기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혼이 빠진 청년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기업들이 스펙을 보지 않는 채용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성품, 업무능력, 태도를 평가하는 채용방식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원하는 인재를 뽑는 완전한 채용방식은 못 되는가 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이런 채용방식에 맞춰 자기소개서나 면접시험에 대비하는 서비스를 해주는 업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납니다. 웬만한 재벌기업이 신입사원을 모집하면 수만 명이 몰려드는 판국에 그 많은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판단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 작업을 외부 업자에게 외주를 주는 상황이 되었으니 회사의 장래가 걸린 신입사원 채용이 두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신입사원 채용과 교육을 담당했던 유명 재벌기업의 전직 임원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지원자의 자소서와 면접으로 사람을 대부분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경을 써도 10%의 인력은 정말 원하지 않는 사람을 뽑게 됩니다. 요즘 대학생들의 자소서 및 면접 기술은 인사 업무의 베테랑도 속아 넘어갈 정도입니다.” 

신입사원들은 대학 때 스펙을 쌓느라 인성을 잃어버리고, 경력사원들은 입사지원서 작성에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채용 회사의 장래도 걱정이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도 암울해 보입니다. 
대학생의 스펙 쌓기와 경력사원의 스펙 속이기 같은 부작용은 청년들이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청년실업의 누적현상이 몰고 올 파장이 언젠가 쓰나미처럼 우리 사회의 방파제를 뛰어넘어 덮쳐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구릿대 (산형과)  Angelica dahurica

겨울이 깊어갑니다. 적막강산 겨울 벌판에는 하얀 눈이 내려 쌓여 화려했던 지난여름 한철의 온갖 사연들, 열정과 기쁨, 시련과 아픔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한 해의 새 출발을 위한 비움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높고 깊은 산지에서 자라는 장대한 구릿대 모습입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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