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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삼권(三權)분립은 있는가?
2015.01.22
필자가 사회 시간에 민주국가에 대해 배울 때 가장 먼저 삼권분립과 그 정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깨우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근래 우리 사회에서 삼권분립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어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정치 제도와 인간관계’에 관련한 1970년대 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독일 총리인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tt, 1918~, 재임 1974~1982)가 행정 수도 본(Bonn)에서 회갑연을 맞이했을 때 일입니다. 당시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연방법원(Der Bundesgerichthof)의 법원장이 멀리 떨어진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본으로 와서 총리의 60회 생일을 늦은 밤에 조용히 축하해주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다음 날 언론 기사로 알려졌습니다. 즉 행정부 수장과 사법부 수장이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도 함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필자는 두 수장이 왜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으로 만나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연방법원이 왜 행정 수도가 아니라 멀리 동떨어진 카를스루에에 위치하는지를 깨달으며, 철저한 삼권분립 정신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의미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 서아프리카의 한 골프장에서 이와는 아주 다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필드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골프 클럽을 잡은 사람은 두어 명인데, 그들 뒤를 20여 명이 따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골프장에서는 다소 생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식 골프 경기 때 몰려다니는 갤러리(gallery)처럼 말입니다. 알고 보니 대통령이 ‘운동하시는데’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치권의 우두머리들이 ‘대통령님’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삼권분립 정신’은 너무 먼 이야기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요즘 우리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을 볼라치면 삼권분립 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의 정치 풍토와는 거리가 먼 것 같고, 서아프리카의 풍토와도 똑같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삼권분립 정신이 철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모이는 신년 인사 행사에 삼부 요인이 함께 참석하는 것이 무슨 ‘미풍 전통’인 양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정치학도가 아닌 필자로서는 매우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 같은 국내 정치 모습을 보면서 근래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사회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시쳇말로 ‘갑(甲)과 을(乙)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혼탁한 것은 국가 제도를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권력이 하나의 정점을 향해 몰리는 행태는 결코 민주국가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온 국민이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국가 제도의 근간인 삼부 수장들이 함께 화기애애하게 모인 신년 행사에서 얼마나 ‘각하…’ 중심의 대화가 오갔을까 생각하니 서아프리카에서 본 골프장 정치 풍경이 떠오르면서 씁쓸해집니다. 결코 웃으며 넘길 사항이 아닙니다. 어떠한 제도든 숨 막힐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입니다. 우리 모두 ‘Back to the basic’이라는 구절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조용한 마음으로 되새겨봐야 할 듯싶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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