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규제는 정말 풀렸는가 [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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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규제는 정말 풀렸는가

2015.01.21


한국 방문 중에 인상 깊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일상용품을 캐나다로 보내기 위하여 우체국엘 갔었는데 박스를 사기만 하면 포장에 필요한 가위와 접착테이프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 우편 EMS 운송비가 캐나다에 비하여 무척 싸서 부러웠으며 특히 놀라웠던 것은 창구에서 근무를 하는 남자 직원이 박스에 짐을 넣고 싸는 것을 도와준 일입니다. 물론 한가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무겁고 큰 박스를 싸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도움을 준 그 공무원의 친절은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토론토는 몇 년 사이 한국의 택배회사들이 많이 진출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우송할 소포들이 빠른 시간(배달까지 거의 일주일 걸림)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캐나다 우체국에 비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운송해주어 많이 편해졌습니다. 물론 나는 자동차로 2시간 왕복 거리의 교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나가야만 한국으로의 택배가 가능하지만, 빠른 배달과 한국 우편국에서 이곳으로 보내는 EMS의 싼 운송비가 한국으로 보내는 한국 택배회사 토론토 지점의 요금과 같아 종종 이 지점들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캐나다의 우체국은 민영화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우표와 소포비가 너무 비쌉니다. 우표 값도 지난 5년간 무려 4번이나 올랐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자주 우표 값을 올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까지 항공우편 카드 한 장 보내는 값이 3~5달러가량이고 분실을 우려하여 등기우편으로 보내게 되면 12~20달러를 내야 합니다. 인접한 미국으로 가는 등기우편도 20달러 정도이며 캐나다 국내로 보내는 등기우편 값은 12달러입니다.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시카고까지 가는 우편물(소포 제외)은 보통 10일 이상 걸리는데 우체국에서는 5~7일 걸린다고 말하지만 그건 말뿐입니다.

어제 시카고까지 4~5킬로그램의 소포를 4~5일 걸린다는 캐나다 우편국의 특급우편으로 보냈더니 무려 57달러가 들었습니다. 온타리오 호수만 건너면 시카고는 토론토에서 아주 가까운 미국도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태평양 건너 한국으로 가는 한국 택배회사에 지불하는 가격과 거의 비슷합니다. 14달러를 지불하면 보낼 수 있는 일반 소포는 우체국 직원의 말에 의하면 7~10일 걸린다고 하지만 경험상으로 15일 이상 걸릴 것입니다. 그런 데다 일반 소포는 수취인 확인을 할 수 없어 분실되어도 항의를 할 수 없습니다.

캐나다 우편국을 통하여 한국으로 보내는 운송료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 아무리 작은 소포라도 수취인 확인을 할 수 있는 등기 항공 소포는 무조건 8만 원 이상이며 (가로 25센티미터 세로 20센티미터 깊이 5센티미터 미만의 상자) 웬만한 박스에 3~5킬로그램 무게가 될 때는 150~200달러가 듭니다. 수취인을 확인할 수 없는 일반소포의 운송료는 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까지 100달러 미만이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값은 이렇게 싼 편이지만 수취인을 확인할 수 없어 분실할 경우 그냥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우체국에서는 무료 테이프를 주거나 포장하는데 도움을 주지도 않거니와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싼 우편료를 지불하는데도 늑장까지 부리는 우체국에 갈 때마다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한국에서 보낼 모든 우편물을 한국의 지인(여성)에게 보내 그녀가 내 대신 우체국에 가서 부치게 하는 수고를 끼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내가 개인마다 각각 보내게 될 때 생기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이지만 과연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싶은 생각이 작년 12월엔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수취인의 주소가 변경되어 반송되는 우편물까지 있으니 그녀가 얼마나 귀찮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이런 폐를 끼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바쁜 시간을 쪼개 우체국에 가는 그녀의 수고를 우편물을 받는 분들이 알아줄 리가 없어 대단히 미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정말 황당하고 화가 많이 났던 일입니다. 캐나다 우편국의 우편료 횡포가 싫어 그나마 때때로 이용하던 한국 택배회사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한국 택배회사엘 가면 한국 수취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합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한국 세관에서 통관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만 한국 세관에서 요구한다는 말만 되풀이하여 한국의 지인을 통하여 조회를 했더니 그게 사실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주민등록증이 얼마나 중요한 신분증인지 모두 알 것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신분증은 운전면허증입니다. 또한 여권이나 시민권 카드(비 이민자인 자국 출생자는 출생증명)로 신분 확인이 되겠지만 매일 갖고 다니며 사용하는 운전면허증은 분실해서는 안 되는 중요 신분증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주민등록증은 중요 신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타국에서 한국 택배회사를 통해 한국으로 보내는 소포에 수취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국으로 소포를 보내기 위해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입하는 것까지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알지만 일일이 수취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물어서 기입해야 한다면 한국 택배회사를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지인들에게 과연 주민등록번호를 물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개인정보 유출이 아닌지요. 소포를 보내며 받는 이의 신분증 번호를 소포에 기입하는 국가가 있습니까?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이젠 비싼 캐나다 우체국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점점 한국으로의 우편물 발송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캐나다보다도 친절하며 편리해지고 살기 좋아진 한국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규제를 풀겠다고 하더니 또 다른 규제가 생긴 데는 국민들도 책임이 있을 것이며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한국 택배회사의 소포에 주민등록 번호를 기재하도록 바뀐 세관의 정책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불법적인 물품들의 거래나 호화 사치품을 온라인 구매하면서 탈세를 하는 일부 국내 소비자들 때문에 짜낸 정부의 고육지책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비상식적인 규제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필요 없는 규제가 많을수록 그 사회는 물이 흐르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고이는 이치와 같으니까요.  

필자소개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에 디자이너로 종사.
현재 구름따라 떠돌며 구름사진 찍는 나그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속새 (속새과)  Equisetum hyemale

소나무만이 홀로 푸름을 자랑하는 겨울 산속, 온 산에 가득했던 초록빛은 사라지고 떨어진 낙엽은 찬바람에 뒹굴며 흙 속에 묻혀 흔적조차 지워져 가는 짙은 회갈색 어둠에 싸인 겨울 숲 속. 무거운 적막감이 쌓여만 가는 황량한 겨울 숲에 눈이 내렸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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