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년 애환 서린 공평동 ‘육의전’ 뒷골목,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경제문화 Economy, Culture/경제금융 Economy Finance2015. 1. 17. 11:40
포스코건설 ‘6700억 프로젝트
대규모 오피스타운 건립사업 논란
16세기 집터, 우물, 백자 등 유물이 출토된 서울 종로 공평동 발굴현장. (사진=왕진오 부장)
유적이 발견된 공평 1,2,4지구(연면적 12만4720㎡)는 포스코건설이 시공하는 지하8층, 지상 26층규모의
업무용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공평동에서 출토된 집터 중 일부는 가옥 면적의 대부분이 대청마루로 구성된 독특한
형태라 상업용도 건축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건축학계는 보기 드문 건축물인 만큼
세밀한 보존대책을 세워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제공=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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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공평동 개발지구에 500여년 전 조선시대 집터와 골목길, 생활도구들이 대거 발견돼 역사건축학계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당초 이곳에 건립될 예정인 대규모 오피스타운 건립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유구(遺構·건축물 흔적) 중 일부는 조선시대 핵심 상권인 육의전(六矣廛)과 인접해 대청마루가 발달된 건축 형태를 보이는 등 지금껏 종로 일대에서 발견된 고옥(古屋)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사실을 CNB가 단독 확인됐다. 인근 청진동(피맛골) 지역의 대규모 유적들이 개발일정에 밀려 이미 사라진 터라 상대적으로 공평지구에 쏠리는 관심이 커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조선시대 핵심상업지 개발로 사라질 위기 피맛골 없어져 공평동이 마지막 ‘종로통’ 공간 대부분 대청마루…특이가옥 발견돼 시티코어·포스코건설, 수천억대 개발 주도 유적이 발견된 공평 1,2,4지구(연면적 12만4720㎡)는 포스코건설이 시공하는 지하8층, 지상 26층규모의 업무용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12월 해당 지구에 대한 정비계획을 최종 결정했으며, 이후 금호건설(금호산업 건설사업부)이 개발 시공사로 참여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주도했지만 금호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이후 2012년 말경 부동산개발회사인 (주)시티코어가 투자자를 모아 사업을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시티코어는 효율적인 자산관리를 위해 애플트리프로젝트투자금융주식회사(이하 애플트리)를 세웠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PF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을 만든 것. 자산 유동화를 위해 세워진 특수목적회사인 애플트리는 사업수행을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페이퍼컴퍼니 성격이다. 애플트리가 이 지역에 설립할 오피스타운의 총 사업비는 6700억원 규모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을 맡았으며, 기업은행과 신한금융투자 등이 대출 주관사로 참여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교직원공제회 등 연기금 기관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부동산펀드를 만들어 재무적 투자자로 함께했다. 애플트리의 최대주주(지분 50%) 겸 운영사는 시티코어다. 2007년 설립된 시티코어는 청진동 재개발 등 종로∼광화문일대 건설 사업 주도해 왔다. 사업규모에 비해 회사규모는 작다. 종로의 한 오피스빌딩에 입주해 있으며 직원은 10여명에 불과하다. 시티코어 관계자는 CNB에 “투자금융사들과 (공평동) 개발사업 및 대출약정 계약이 체결돼 있으며, 사업 진행 일정에 따라 자금이 순차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 ‘16세기 집터·골목’ 깜짝 공개 이런 가운데 15일 문화재청은 깜짝 놀랄 사실을 공개했다. 문화재청은 이곳이 16세기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시대 주거 밀집지였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발견된 37개의 건물터는 모두 규모가 제 각각이었다. 사용된 돌의 종류도 다양해 서민과 양반 등 다양한 계층이 어울려 살았던 동네로 파악됐다. 온돌 마루에 불을 지피던 아궁이와 대청마루, 건물 기둥을 올리기 위해 땅을 다진 돌터와 양반 가옥의 앞마당 등 16세기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와 조각, 백자와 청자의 파편들 그리고 우물 속에 빠진 동물 뼈 등도 출토됐다. 건물터 옆에는 너비 3m 안팎의 큰 골목길이 발견됐다. 조선전기부터 현재까지 500여 년간 그 모습 그대로 이어져 온 골목길이었다. 문화재청은 임진왜란 당시 종로 일대 대부분 건물들이 불에 타 소실됐으며 그 터 위에 신·증축, 개·보수를 거치다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개발이 진행돼 터 위의 건물이 철거되자 원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해당 지역 문화재 검토위원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세, 지형에 따라 구획된 필지가 거의 변함없이 500년 이상을 유지해 왔다”며 “과거 흔적들이 상상이상으로 잘 보존돼 있어 조선시대 도로(골목)가 현재까지 이어져 온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학계는 이곳이 조선시대 상업중심지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개발지역 코 앞에 종로 상권의 핵심인 육의전(六矣廛)이 있었다. 육의전은 정부가 취급품목에 따라 6개의 대형 관설상점가(官設商店街)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점포를 대여해 주고 임대료와 세금을 받은 데서 유래됐다. 이들에게 난전(亂廛)을 단속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하는 대신, 궁중·관청의 수요품, 중국으로 보내는 진헌품 조달을 부담시켰다. 또 공평동 주변으로는 보신각, 의금부터, 수진궁터, 순화궁터, 사동궁터, 시전과 행랑 등 조선시대 중요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곳의 역사적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면밀한 보존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학계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집터 중 일부가 일반 가옥과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집터에는 작은 부엌이 딸린 방 한 칸이 숙박시설의 전부였고 나머지 공간은 마루였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는 “여러 집터 중 2채가 디귿(ㄷ)과 미음(ㅁ)의 형태인데, 집의 전체 크기에 비해 대청마루가 굉장히 넓은 독특한 구조였다”며 “이 동네가 육의전과 바로 마주하고 있어 종로상권과 관련된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많은 상인들이 오가는 지역이다 보니 주거(온돌)보다는 상거래 위주의 공간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안 교수는 “이런 특이한 가옥구조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유일하다”며 “인접한 청진지구(피맛골) 개발 때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개발에 묻혀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학계가 이번 발굴에 주목하는 것은 과거 청진동 개발 때 발견된 많은 문화재들이 사장되는 바람에 종로 일대에서 이곳이 현존하는 유일한 집터 유적이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거 발견된 유구들보다 보존상태도 훨씬 좋다. 종로 일대는 1980년대부터 재개발이 진행돼 왔는데, 이때부터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기 전인 1999년까지 수많은 유적들이 사라졌다. 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발굴조사가 진행됐지만 이마저도 보존을 위한 조사가 아니라 기록에 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극히 일부분만 보존됐고 나머지는 땅속에 묻혔다. 서울 전체 개발역사 가운데 유적지 발견으로 사업이 중단돼 그 자리에 옛모습이 복원된 경우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유일하다. 한 역사학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땅에 개발허가를 해준 자체가 문제”라며 “개발 논리에 밀려 조선시대 사대문 안에 살았던 서민들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서울 종로구 공평동 발굴현장(왼쪽)과 개발 전 모습. (사진=왕진오 기자) 시티코어 “새건물에 옛골목 살리겠다” 한편 개발시행사인 시티코어 측은 새로 지어질 복합빌딩 1층에 옛골목의 동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통로를 만들어 역사적 의미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골목을 형성하고 있었던 가옥들에서 발견된 유물 중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건물 내 전시실에 비치해 보전할 계획이다. 이 방안을 놓고 이미 문화재청과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발굴조사기관인 한울문화재연구원의 박호승 팀장은 “건물이 지어지면 1층이나 지하에 이번에 발견된 도로와 골목길의 동선을 유지하는 복원작업을 진행해 공평동 한옥 역사를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시티코어 관계자는 CNB에 “골목길을 옮겨서 복원하는 것보다 골목길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존치시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건축심의 때 이 방안이 좋은 평을 받았다”고 전했다. 역사건축학계에서는 시티코어가 내놓은 안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실제로 이 계획이 제대로 진행될 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안창모 교수는 “새로 지을 건물내에 골목길을 살리겠다는 기본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과거 청진동 개발 때도 개발사들이 제대로 복원약속을 이행한 경우가 드물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구체적인 보존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 관계자는 “골목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업시설로 추정되는 독특한 형태의 집터들을 어떻게 복원할지도 깊이 고민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례로 KT는 최근 종로구 청진동에 신사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유구, 분청사기 등의 유물이 발굴됨에 따라 건물 바닥을 유리로 시공, 유구의 모습을 전시했다. 이 과정에 수년이 걸렸지만 학계에서는 첨단 IT기술로 만들어진 투명전광유리의 특성상 조상의 손때가 묻은 유적 고유의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종로구 공평동 개발지역의 1914년 지적도와 현재 지적도. 골목길 동선이 100년 전과 거의 일치한다. (제공=문화재청) 대한항공·삼성화재 ‘타산지석’ 될까 이번 발굴조사는 지난해 6월 27일 시작돼 오는 2월 28일까지 총 179일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시티코어와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은 올해 안에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과 자금을 대고 있는 금융사들은 자칫 문화재 발굴·복원이 길어져 공사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번 발굴은 향후 개발예정인 대항항공의 경복궁 옆 한옥호텔 건립사업, 삼성화재의 인사동 대성산업 부지 개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평지역의 발굴·보존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인접한 개발지역 문화재 보존의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창모 교수는 “문화재관리법상 건설사업을 진행하다 문화재로 추정되는 유물 등이 발견되면 발굴 및 보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노력은 개발사의 몫인 만큼 문화재청 입장에서는 개발일정을 고려해줄 이유가 전혀 없다”며 “피맛골(청진동), 인사동 등 종로의 뛰어난 전통문화 밀집지역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철저한 보존대책을 수립해 다음 개발지역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도기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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