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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乙)의 해를 꿈꾸며
2015.01.09
갑오년이 가고 을미년이 왔습니다. 갑오년은 소위 ‘갑(甲)질’의 해였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대리기사에게 횡포를 부렸던 국회의원님, 골프장 캐디를 술집 접대부로 착각하는 전직 국회의장님, 전공의 대학원생들을 성추행 했던 교수님들까지 이 땅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형태의 갑질 때문에 갑오년은 몹시 피곤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터진 ‘땅콩회항’사건은 갑오년 갑질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했습니다. 작년에 드러난 갑질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당 시간 누적되고 반복되던 갑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갑오년은 그동안 누적된 갑질이 세상에 드러나서 비판을 받기 시작한 해라고 보는 것이 맞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어찌된 일인지 갑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우리들 대다수는 을(乙)과 병(丙)으로 살면서도 말입니다. 아마도, 나도 언젠가는 갑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갑이 세상의 중심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층이 대물림되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 갑이 갑을 낳고 을이 을을 낳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갑의 횡포에 대해 을은 당연히 저항을 할 것 같습니다만, 갑을(甲乙)관계에 내재한 경제적 종속관계가 을의 저항 의지를 무력화시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치사하고 더러워도 참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미디어에서는 수많은 성공 스토리가 소개됩니다. 2천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해서 20억 부자가 된 사람, CF 한방에 전성기를 맞이한 연예인, 해외 프로구단에 수십억의 몸값을 받고 스카우트된 선수, 천만 관객을 돌파해서 수십억 원의 러닝개런티를 받는 배우들까지, 갖가지 사연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일반화시키기에는 매우 무리가 있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을은 이러한 비현실적인 성공을 보며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한방을 꿈꿉니다. “인생 뭐 있어? 한방이면 끝나!” 술자리에서 몇 번은 들어본 얘기이거나 한 번쯤은 해본 얘기일 것입니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부자가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같은 얘기를 지금 초등학생들에게 해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책보다 무서운 것이 경험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살면서 학습한 바로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은행 좋은 일 시켜주는 것이었고 근면하고 정직하게 살면 편법으로 앞서가는 사람에게 자꾸 뒤처졌습니다. 그래도 필자가 어렸을 때는 공부를 통해 신분 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인 교육마저도 돈에 의해 차단기가 내려져 있습니다. 결국, “인생 뭐 있어? 한방이면 돼!”라는 말 속에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깊은 체념과 비애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을이 갑이 되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평범한 많은 사람을 또 한 번 울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젠가 이건희 회장이, “21세기에는 비범한 천재 한 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맞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제갈 공명도 아닌데 죽어서도 애플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기업의 바깥으로 나와서 우리 사회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만 명이 먹고 사는 문제를 천재 한 명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혁신과 이윤으로 살아나가야 하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가치는 매우 다양합니다. 배려와 분배, 안정과 정의 등등, 많은 가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유지는 구성원의 합의로 만든 시스템에 의존해야 합니다. 따라서 천재 한 명에게 의존하는 사회는 독재를 용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아무리 비범한 천재라도 사회에서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그 능력에 의한 평가가 아닌 인격에 의한 평가가 내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의 말을 듣는 수많은 을들은 마치 천재에 얹혀가는 삶을 사는 것 같은 미안함과 비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아울러 비범한 천재는 갑의 지위를 갖는 것이 당연하며 그들이 받는 엄청난 연봉도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쯤 되면 비범한 천재를 고용한 고용주는 더 높은 곳에 위치한 거룩한 분으로 느껴지게 됩니다.지난 몇 년간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독재정치를 청산하자 금력이 사회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재벌의 오너 일가는 적어도 자신이 세운 기업 안에서는 황제처럼 군림하는 게 가능해졌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대를 이어 경영권이 내려오면서 마치 경영권이 신에게서 부여되는 당연한 권리인 양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군림을 견제해야 할 정치권은 수십 년간 재벌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기업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사는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진실을 외면했던 언론 역시 제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어지간한 잘못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묻힌 이유는 정치와 재벌, 그리고 언론의 달콤한 밀월관계 때문이었습니다. 87년 민주화 항쟁은 온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낸 값진 승리였습니다. 이제 30년이 돼가는 지금,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던 젊은 지도자들은 다들 한 자리씩 하고 있는데 그때 최루탄을 맞아가며 시위에 동참했던 학생들은 대다수가 을의 삶을 살다가 이제 쓸쓸히 은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주화는 왜 필요했던 것일까요? 온갖 부조리와 부패가 만연한 사회를 바로잡고, 한 사람 또는 한 무리에게 쏠려 있는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민주화를 이뤄냈을지 몰라도 우리가 먹고사는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세상이 변했습니다. 그때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이제 세상의 주인공이 을(乙), 병(丙), 정(丁)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인 그들이 주인이고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죄다 들러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던 시기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고도 성장을 하던 시기엔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모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모두가 머슴이 되었습니다. 오너가 아니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내수가 침체됐다고 얘기를 하고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정부가 예산을 쏟아붓고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실물경기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경기침체가 숫자로 얘기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에 만연한 패배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돈을 아무리 찍어내고 풀어봤자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꼴입니다. 을미년은 오로지 갑만 중심이었던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을, 병, 정이 동등한 주인공으로 대접받기 시작하는 원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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