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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줄이는 해
2014.12.31
가계부채 1,060조원(2014년 3분기말 현재 ), 국가부채 1,200조원(2012년말 현재).한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이 쌍둥이 빚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경제 수치들은 오르내림이 있으나 이 빚은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도 매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 또한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습니다.이 수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수치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850만 명, 기준 금리 2%, 가계저축률 4.5%,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600조원 등입니다. 빚을 지게 되는 원인과 결과 그리고 날로 심화하는 가계와 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차로 인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 등 시대의 질곡이 이들 수치 안에 있습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빚이 많으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외채관리 실패로 나라가 부도 난 것이 1997년의 외환위기였습니다. 경제가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현상인데, 그 역시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던 가계가 빚을 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집장만이고, 우리나라도 주택담보대출이 51.6%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알아주는 교육열로 인해 자녀교육비도 빚의 큰 몫을 차지합니다. 나라의 빚은 필요 이상의 선심행정과 전시행정이 주범입니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집권만을 노려 복지, 인프라 확충을 명분으로 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합니다. 국가 채무는 기준에 따라 규모도, 위험도도 달라지지만 한국의 부채가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만큼은 한결같습니다. 정부의 말에 믿음이 가서가 아니라 국가부채보다는 가구당 6,000만원에 이른 가계부채가 더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처럼 국가가 부실하면 가계라도 튼튼해야 하는데 우리는 동반 부실이니 걱정입니다. 가계부채는 근본적으로 소득보다 지출을 많이 한 결과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가계의 소득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계 저소득의 핵심에 전체 근로자의 45%에 이르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절반 정도밖에 못 받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이 10%에 불과해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립니다. 비정규직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절감액은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갑니다. 600조 원에 이르는 10대기업의 사내유보 축적에도 비정규직의 기여가 있을 것입니다. 기업 실적이 좋아진 것을 말할 때 흔히 '고용 없는 성장' 덕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할 일을 기계가 했다던지, 두사람이 할 일을 한사람이 해서 인건비를 줄였다는 말입니다. 기업의 수익력은 기술개발과 영업개발에 달린 것이지만 대개의 경영자들은 인건비 절감을 가장 쉽게 생각합니다.기업의 유보금 축적은 재무 건전성과 투자여력을 위해 지극히 바람직합니다. 다만 사내유보가 대기업 위주이고, 중소기업 및 가계 궁핍화의 결과라면 정상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의 수익은 근로자(특히 비정규직 근로자)와 하청기업과 나누는 것이 정상입니다.가계부채가 가계저축률을 떨어뜨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개발연대에 15~20%에 달했던 가계저축률은 외환위기 때 한자리수로 떨어진 이후 줄곧 3~5% 수준을 맴돌고, 현재는 4.5%입니다. 저축할 여력도 없고 또 저축을 해봐야 목돈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쓰고 보자’로 나타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가계부채가 많다보니 은행 금리를 올리기도 어렵습니다. 하우스푸어 가계에 원리금 압박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가계가 어려워지면 은행도 위태로워집니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도 그래서 터졌습니다. 그것이 사상 최저인 기준금리 2%의 저금리 정책의 배경입니다. 미국 일본 등에서 양적완화라는 이름의 돈풀기 정책이 저금리와 병행해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런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저금리 정책의 목표는 경기활성화입니다. 기업과 가계에 싼 이자의 은행 빚을 얻어 투자하라는 얘기입니다. 돈이 되는 투자처가 있다면 가계든 기업이든 빚을 내서라도 투자할 것이나 그런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대기업도 사정은 같습니다. 정부가 유보금에 과세하겠다며 투자를 강요하고 있지만 먹혀들 여지는 적습니다. 경기활성화는 가계의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 증대가 선순환 구조입니다.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획기적인 조치들입니다.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정도로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이 효과가 빠르고 손쉽다고 해서 빚더미 가계에 은행 빚을 내서 아파트에 투자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위험한 정책입니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재앙의 위험성이 있는 것을 정책으로 호도해서는 안 됩니다. 가계도 생각할 게 있습니다. 저축은 여유 있을 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맨 상태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토대를 닦은 개발연대에 가계가 그렇게 저축했습니다. 빚을 두려워함이 없이 일단 ‘쓰고 본다’는 소비행태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대표적인 소비국가입니다. 취업의 기회가 넓고, 사회안전망도 비교적 잘 갖춰진 나라입니다. 저축을 하지 않더라도 생계의 염려가 크지 않아 버는대로 다 쓰는 가계저축률 0%의 나라였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우리보다 더 저축률이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2015년은 양띠의 해입니다. 양은 유순하지만 강인한 동물입니다. 한국인의 기질을 닮았다고 합니다. 내년 경기전망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가계소득이 크게 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런 때에 가계를 튼튼히 하려면 쓸 것을 덜 쓰는 길밖에 없습니다. 새해는 가계나 국가나 빚을 줄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빚 무서운 줄 모르다 나라가 부도난 일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물억새 (화본과)
선유도에서 무녀도로 넘어가는 사구(砂丘) 길 망주봉 아래 갯물이 드나드는 저지대에 물억새가 어우러져 하얀 파도가 넘실대듯 춤을 춥니다. 뒤에 삐죽이 보이는 망주봉의 슬픈 넋인가 봅니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물억새 하얀 물결탐스럽고 소복이 피어 올린 물억새 이삭 위로 세월 흐르듯 갯바람이 미끄럼을 타고 하얀 이삭은 넘실넘실 너울춤을 춥니다.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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