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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
2014.12.30
곧 눈이라도 내릴 듯 회색빛 하늘이 적막감을 더합니다. 모든 것이 침묵 속에 사그라지는 듯 이른 새벽 찬 공기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합니다. 하얀 우유를 한 잔 데워 손에 들고는 다시 베란다로 나와 창밖 풍경을 바라봅니다. 순간 앙상한 나무 하나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목련나무에 버들강아지처럼 너무도 사랑스러운 겨울눈이 핀 것입니다.목련의 겨울눈은 탐스럽습니다. 목련의 겨울눈은 아주 연한 담묵(淡墨)을 머금은 붓처럼 생겨 목필(木筆)이라고도 합니다. 봄에 새싹이 나올 수 있도록 추위에 어는 것을 막기 위해 솜털 집을 지어 월동을 합니다. 그래서 겨울눈을 월동아(越冬芽)라고도 합니다. 내년 이른 봄 이 겨울눈에서 아주 연하고 보드라운 새순이 돋을 것을 상상하니 코끝마저 간지러워집니다. 갑자기 베란다의 다른 식물들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블루베리 나무 화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무는 어느새 잎을 수북이 떨어뜨렸습니다. 나뭇잎을 통해 물기가 오갈 수 있으니, 그 통로를 차단하여 스스로 얼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수분이 빠진 마른 나무 가지 끝에 아주 작게, 그리고 수줍게도 붉은 윤택이 흐르는 겨울눈을 피웠습니다. 그 자리는 보랏빛 열매가 맺히는, 생명을 품는 자리입니다. 꽃도 열매도 절로 피고 맺지 않습니다. 그래서 꽃만 볼 일도 열매만 감탄할 일도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달빛도 보고 바람도 보고 눈도 보고 견디기 어려웠던 세월의 무게도 볼 일입니다. 정말 귀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나뭇가지에 맺힌 겨울눈을 보며 생명을 향한 부단한 노력과 지혜와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노지는 아니어도 베란다의 추위 또한 만만치 않을 터인데, 그래도 식물이 자라는 데 중요한 게 공기이니 창문을 열어 공기를 순환시켜봅니다. 그리고는 거실로 들어와 추위를 저만 피한 것 같은 미안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서서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뭇잎이 없어야 가지가 보이고 본질이 보인다는 말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창 밖 먼 겨울나무들은 한 편의 수묵화입니다. 수묵은 새로운 시작이고 아득한 끝이기도 합니다. 수묵의 먹빛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처럼 가마득하고 또 가마득한 오묘한 변화의 문입니다. 그래서 감각이나 지각을 초월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어떠한 분별도 한계점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먹빛은 한없이 그윽하게 겨울 풍경을 담아냅니다.겨울의 색은 흰색과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듯합니다. 색채심리에서는 흰색을 시작으로, 검은색을 죽음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겨울은 시작과 끝이 함께 공존하는 셈입니다. 그래도 마지막 달력의 남은 날들을 들여다보고 다시 창밖의 나무들에 시선을 두며 겨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립니다. 제 마음을 들어주는 듯 검게 빛나는 나뭇가지들도 말을 겁니다. 겨울눈을 보라고, 이미 시작하였다고.지금은 월동의 기간일 뿐입니다. 나뭇가지의 겨울눈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겨울이 아니라 이미 한여름부터였습니다. 그래서 겨울눈은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만 너무나 귀한 것이었기에 눈에 잘 띄질 않았던 것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죽은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부단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고난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묵묵히 그 어려움을 이겨낸다면 꽃 피는 봄처럼 삶도 같이 피어날 것입니다. 고요 가운데 마른 나뭇가지들을 바라봅니다. 겨울눈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 겨울 한 해의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이미 새로운 시작입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한국화가.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채색화와 색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화폭에 향수 사랑 희망의 빛깔로 채색된 우리 마음의 우주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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