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타자는 누구?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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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타자는 누구?

2014.12.26


갑오년 마지막 달의 중순 금요일 오후에 스마트폰에 "쿵 하고 왔다 쿵"이란 메시지가 떴습니다. 대학 시절 농촌봉사 활동 서클(지금은 동아리라고 부름)인 향토개발회(鄕土開發會) 멤버였던 친구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였습니다. 쿵-쿵으로 표현한 것은 그 친구의 이름을 따라 부르던 별명이 ‘쿵덕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이어진 글은 “금일 OOO 동지 영면. OO구로병원 장례식장 111호. 낼 12시에 조문 예정”이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조문을 가서 친구들과 만났을 때 “이 친구가 4번 타자네!”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개발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던 동기들 중 11명이 졸업 후에도 계속 모임을 가져 왔는데, 이 친구가 4번째로 저세상으로 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흘러나온 이야기였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게 묵직하게 다가오는 일이지만, 친구의 조문 자리에서 4번 타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어느새 70을 향해 달려가며 많은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접해오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긴 마음의 여유에서가 아닐까요.

제일 먼저 우리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1번 타자는 30대 후반에 저세상으로 떠났고, 2번 타자는 중동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돌아와 풍토병으로 타계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놀부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친구가 3번 타자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놀부를 저세상으로 보내며 그동안 자주 만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우리들은 한창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가는 친구들의 죽음으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중압감으로 ‘아마도 우리가 너무 자주 만나서 그런가 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만남이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임이 뜸했던 시절 한명의 친구도 저세상으로 가지 않았고, 세 친구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져가며 우리는 다시금 자연스레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앉아 친구의 조문 자리에서 회자되었던 대학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는데, 문득 “5번 타자는 누구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손길이 가지 않았던 책장의 아래쪽에 있는 박스를 열어 당시의 기록과 편지들을 뒤져보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대학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시절인 1968년에 발간된 향토개발회의 ‘십년사(十年史)’였습니다.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11명 중 나를 포함해 4명이 선배들과 함께 십년사의 자료수집 및 정리를 담당하는 편집자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발간된 지 반세기가 다 되어 가는 싯누런 책의 표지를 넘기니 속표지에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을 바친 이름 없는 별들에게 삼가 이 책을 올립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향토개발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당시 피 끓는 청춘들답게 강한 이념으로 뭉쳐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1대부터 이어져온 회원들의 명단이 있었고, 우리 입학 동기는 11대 멤버로 총 32명의 이름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 온 것은 이미 저세상으로 간 4명의 친구들을 포함한 11명이었습니다.

십년사와 함께 간직되어 있는 당시의 기록과 편지들 중에 재미있는 추억이 떠오르게 해주는 편지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3번 타자인 놀부에 대비해 흥부라고 불리던 친구의 편지였습니다. 당시 흥부와 나는 유독 친하게 붙어 다녀 친구들은 우리 둘을 ‘그림자’라고 불렀습니다. 나의 군 생활 중 흥부가 보내온 그림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편지의 추신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추신
9月 6日 MIC로 전화를 했더니 9月 6日 휴가 출발했다기에 학교로 편지한다.
9月 11日이나 12日쯤 여주행 Bus를 타고 대신면에서 내려 113으로 전화를 걸면 그림자가
나타날 거다. 만나길 기다려...

5번 타자의 상념 속에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려집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며,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죽음에 대항 공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매일 방송에서, 신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하루하루를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죽음이 나와는 거리가 먼 타인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죽음이 내 주위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쿵덕쿵처럼 오랜 투병생활 끝에 저 세상으로 간 친구와 곁에서 지켜준 그의 아내를 보노라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최선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친구를 떠나보내며 내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겨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떠나는 ‘죽음의 미학’을 떠올려봅니다.

오늘이라는 삶에서 내일이라는 저세상으로 떠나간 4번 타자 쿵덕쿵에게 “평안한 마음으로 잘 가게나. 새로 가는 세상에서 먼저 간 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면 예전처럼 어울려 옛 추억을 이야기하게나. 그리고 조급한 마음으로 5번 타자를 기다리지 말고 평온한 마음으로 잘 지내기 바라네.”라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냅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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