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독신자'로서의 삶이 괜찮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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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ffington Post   Kelley Calkins

난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맥락에서 난 영구 독신자다.

다르게 말하면 수 년간 진지한 사랑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5년? 어쩌면 더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사항도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이 내가 성립하려는 더 광범위한 이론을 뒷받침해줄지도 모른다.

즉 이성관계가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도 그럴 리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나의 더 큰 욕심이 있다면? 관계가 없이도 나의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글은 다른 독신녀들을 위한 시도 아니고(물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커플들을 시기하는 수필도 아니다(오히려 당신들이 커플로 잘 사는 것을 축하해주고 싶다). 단지 나와 비슷한 삶을 지향하면서도 소리 없이 지내는 수많은 동지들을 대신한 글이라고 보면 된다. 즉 독신으로 살지만 독신이라는 사실에 별로 집착하지 않고 사는 우리들 말이다.

사랑의 상처에 대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노래와 시, 소설('로맨스'라는 하위 장르로 존재할 정도로)이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나도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듣고 읽을 때 감동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자면 그렇다고 깊은 심지까지 흔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면, 헤어짐이나 아픈 사랑에 대해 인식할 수는 있다.

또 집중을 하면 예전의 아픈 기억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독신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그런 느낌을 온몸으로 강력하게 겪는 경우는 없다. 내 세포, 내 인체 어디로도 느낄 수 없다. 정말이다.

또 재밌는 것은 독신으로 돌아와 자유를 얻었다고 외치는 수많은 페이스북의 포스트와 노래다. 내 반응은 "잘했어!"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나는 이런 일에 관해서도 마음 깊숙이로 느끼는 뭔가는 없다.

왜냐면 나는 내 독신생활에서 오는 자유를 100%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당연하게도 아주 오랫동안 내 현실이었다. 갑자기 계획한 보스턴 여행에 대해 누구에게 알린다? 그런 상상조차 못 한다. 태국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무슨 영화를 볼지 누구에게 물어본다?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러니 소위 말하는 독신의 자유를 축하하고 자축하는 이들을 보는 것은 기뻐해 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자유'라는 정의로까지 와 닿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런 자유는 그냥 내 일상이기 때문이다. 누구랑 오래 살다 보면 그 관계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안주하게 되고 또 평범하게 변해간다고 느끼는 것처럼, 내 독신 생활에 대한 내 태도도 마찬가지다. 즉 내 몸에 밴 일부, 일상이다.

매일 밤마다 베개를 함께 베고 누워서 사랑을 속삭일 상대가 있나? 나에겐 없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달콤한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삶에 문제가 없고 거의 완벽하다는 속삭임 따위는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가끔은 혼자 사는 것이 지루할 때가 있다. 그런데 독신 생활을 일종의 관계로 승격시켰다고 볼 때, 어느 관계든 때가 되면 시들해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한 친구는 예전에 사귀던 남자가 새로운 약혼녀를 맞은 것을 알고 괴로워했다. 이해심와 공감력이 충분한 나는 그녀 마음이 매우 아플 수 있었겠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나 자신은 그런 감정에 대해 완전히 면역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약혼으로도 괴로움은커녕 조그만 불편도 못 느낀다. 누가 새로 관계를 맺은 것은 커녕 친구의 결혼 청첩장을 받았다고 해도도 독신에 대한 후회는 없다. 물론 아직 그런 아픈 감정을 느낄 만한 경험이 내게 없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내 지금 이 상태에서 보유한 자유, 이 대단한 자유는 모를 것이다. 단순한 감정이 개입된 그런 관계로부터도 완벽한 이 자유 말이다.

나도 예전에는 감정이 개입된 정도의 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 근래에는 없다. 그러니 친구들이 이성에게서 온 문자에 이모티콘이 있는 것이(또는 없는 것이) 뭘 뜻하는지 정밀 분석에 빠져있는 동안 난 내 맘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독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즉 독신자는 자신이 사랑이나 아낌의 대상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느껴서 독신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누구와 견주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지난 2년 동안 여기저기 떠돌며 살아온 나에게는 두 사람 사이의 뜻깊은 만남 같은 것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땠냐고? 어느 사람을 멀리한 적이 있다.

목록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이유가 다양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목록을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면서 나 자신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따라서 나의 가치와 그 과정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됐다.

번개처럼 번쩍이는 사랑이 내게도 있을 수 있냐고? 나도 당연히 그런 사랑을 믿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목격했기 때문에 신뢰를 안 할 수가 없다. 파티가 한창인 태국 해변에서도 봤고, 버몬트의 어느 산꼭대기에서도 봤다. 두 사람이 중력으로 당겨지듯이 모여 결합되는 현상이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게 '번개가 번쩍'하는 사랑이 나타날 수도 있다(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뉴저지 교외에 있는 집에서 홀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일이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난 수용한다는 것이다. 어느 대상에 대해 흥분하고, 또 그와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분자 구조가 내게도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난 믿는다. 즉 사랑을 위한 기본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번개 치는 일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믿음도 있다.

왜냐면 지금 내 인생은 여러 가지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의 대상이 없다는, 일부가 주장하는 큰 구멍에도 불구하고, 난 엄청난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또 독신이라고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난 나를 사랑하고 포옹해주고 지지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내가 이야기하면 내 말을 들어주고 반대로 나도 그들을 지지하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준다. 술도 같이 마시고 함께 웃는다. 내 삶은 심리학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진실되고 흡족한 인간관계로 가득 차 있다.

내 사랑의 빈자리는 이미 가득 차있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친구들, 그리고 성취감 높은 일로 인해 내 삶은 넘칠 정도로 차 있다. 난 사실 진지하게 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한 번만은 예외로 하겠는데, 난 지금 늘 희망하던 작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몇 사람이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다. 이런 차원에서 요즘 내가 가장 아끼고 가까이하고 있는 것이 영어라는 언어인데, 난 그 사실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나를 딱하게 여긴다면, 당신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무시하는 나를 가까이 와서 관찰해주었으면 한다. 난 똑똑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같은 같은 영구 독신자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항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에게 원래부터 문제가 있어서인지(문제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만은) 몰라도, 지금 이 시대는 건강한 관계(난 건강한 관계 외에는 용납할 수 없다)를 성립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독신자들의 삶에 아무 문제도 없다는 사실이 왜 더 거론되지 않는지 불만스럽다. 독신이란,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만큼 흔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왜 다들 거론하지 않는 걸까.

우리 사회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다. 그 시작과 끝, 환희와 추락에 너무 신경을 쏟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사랑 이야기를 덜 절실하게 느끼는, 혹은 전혀 절실하지 않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숨 쉴 공간을 주자는 것이다.

남의 초원이 더 푸르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왜 내가 위치한 초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영구 독신자 동지들에게 우리들이 사는 초원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자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의 밝고 푸르고 독특한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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