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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대형 교회
2014.12.24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년 만에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두 번 모두 성탄절 즈음에 말입니다. 과자나 떡을 얻어먹으려고 일부러 날을 잡은 건 아닙니다.^^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집에서 걸어 3분 거리에 교회가 있었던 겁니다. 제가 사는 곳은 서울대학교 밑, 일명 ‘고시촌’입니다. 교회 이름도 이와 유사하게 ‘대학촌 교회’인데 마침 올해가 창립 40주년이라고 합니다.그렇다고 내 발로 찾아간 건 아니고, 4년 전 서울대에 교환 학생으로 왔던 저의 둘째 아들을 유난히 챙겨주신 종교학과 교수 한 분이 그 교회에 다니는 인연으로 그리되었습니다. 관악산 끝자락 등성이를 뒷마당 삼아 인근 주택과 담을 나눠 아담하고 소박하게 자리 잡은 교회, 일가 같은 교인들이 좁다란 공간에 어깨를 부딪치며 예배를 드리는 곳에 저도 끼었습니다. 초등학생 예닐곱 명이 맨 앞줄에 앉아 시내에 자갈 구르는 소리로 ‘아기예수’를 찬송하고 그 뒷줄에는 청년도 있고, 나 같은 중년도 있고, 장년들도 계시고, 노년의 모습도 두루 섞여 있었습니다. ‘큰 교회’ 분위기에만 젖어 있다가 두레상 앞에 옹기종기 모인 한 가족처럼 정겹기 그지없는 광경이 생소하기조차 했습니다. 예수님이 두 팔에 보듬기 딱 좋은 크기와 따뜻한 정서를 가진 교회입니다. 지인을 따라 이른바 강남의 대형 교회라는 곳엘 간 적이 있었습니다. 호화찬란한 외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초동 ‘사랑의 교회’를 예로 들면 그만이지 더 말해 봤자 숨만 가쁠 뿐입니다. 다른 강남 교회들은 “둘째가라” 해서 미안하지만요. 외관은 그렇다 치고 교회에서 목사 얼굴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목사 얼굴 보는 것은 고사하고 예배당에 들어가지도 못해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스크린 '중계'를 '시청'했습니다. 목사 얼굴 볼 수 있는 곳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1시간 전에 와서 줄을 서야 한다니, 조조 상영 극장도 아니고 매주 할 짓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불경스런 말이지만 어차피 같은 예수님 만나러 가면서 내 돈(헌금) 내고 문전박대당하는 짓을 왜 사서 한답니까. 내 보기엔 아마 예수님도 문전박대당하지 싶습니다. 목사들 퍼런 서슬에, '삐까뻔쩍' 교회 외관에, 먼지 묻혀 돌아다닌 더러운 맨발로 어딜 감히 들어가신단 말입니까. 더구나 목사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닌다니 예수님도 그네들 얼굴 한 번 못 봤을 겁니다. ‘예수 빼고’ 다 있을 것 같은 게 강남 뿐 아니라 이 나라 대형 교회들에 대한 제 꼬인 심사입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주체 못할 정도로 넘쳐 납니다. 회사로 치면 대기업을 동경하는 심리와 비슷하다 할까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중소기업 사원 앞에서 뻐기고 싶은 것처럼 대형 교회 신자인 것이 남들한테 말할 때 훨씬 ‘폼’나기 때문이겠지요. ‘대학촌 교회’도 처음에는 서울대 생이 주로 다녔지만 요즘 서울대 생은 강남으로 간답니다. ‘개천 용’이 거의 사라진 후 서울대 생의 거개가 강남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현상일 테지만 신림동에 사는 학생들도 강남 쪽 교회로 ‘빠진다’는 것이지요. 지난 40년간 '대학촌 교회'가 서울대 기독 학생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을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요즘 유행하는 ‘갑질’에 교회가 선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들이 함께 여행을 갈 때도 '큰 교회'에서 경비를 대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갑을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늬앙스의 말을 ‘작은 교회’ 목사를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유 없이’ 싫다면 실은 ‘이유가 있는’ 거라고 하지요. ‘투사(投射)’라는 것 말입니다. 어떤 개인이, 어떤 조직이, 어떤 부류가 ‘죽도록’ 밉고 못마땅하다면 바로 그러한 요소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상대에게서 발견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불편해지는 거라네요. ‘땅콩 회항’으로 재벌에 대한 증오심에 겨워하면서도 ‘조현아 땅콩’이 동이 나는 걸 보면 내심으론 재벌이 부럽고 질투난다는 것 아닌가요? 나도 재벌이 되고 싶으니까 재벌이 그렇게 밉고 그 미운 재벌이 욕을 당하니 ‘땅콩’ 씹는 맛처럼 고소한 거지요. 마찬가지로 대형 교회를 욕하면서도 대형 교회를 다니고 싶은 한국 기독교인의 심리를 대형 교회 목사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부풀려 나가는 데 거침이 없는 거겠지요. 또다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다 했으니 적어도 성탄절 하루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갑질’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옹졸한 생각을 품습니다. 교회 규모에 관계없이 예수님 계신 곳이 ‘갑’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감자난 (난초과) Oreorchis patens
가지마다 무성했던 한여름 이파리들이 찬바람 일자 단풍 들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 사이로 하늘이 휑하니 드러나는 겨울, 낙엽이 수북이 쌓인 나무 밑 눈밭에서 파릇파릇 자란 초록 이파리를 만났습니다. 갈색의 낙엽 더미에 눈이 뒤덮인 숲 속 바닥 한겨울인데도 파란 이파리 더욱 싱싱해 보이는 감자난의 모습입니다.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게스트칼럼 / 유능화
필기구 만국 박람회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늘 나와 같이하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색연필, 샤프펜슬, 지우개, 만년필, 그리고 자입니다. 색연필은 주로 신문을 읽을 때 사용합니다.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정성스레 자를 대고 빨간 줄을 긋습니다. 모 일본 사업가가 한다는 방식을 흉내를 내다보니 어느덧 습관으로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빨간 줄을 치면서 읽으면 짧은 시간에 정독을 하게 되고, 제대로 읽은 기분이 들어서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빨간 밑줄을 친 기사를 포함한 섹션은 인터넷 신문을 통해 클리핑을 해서 원노트(One Note)나 에버노트에 저장합니다. 나만의 신문 스크랩 요령입니다. 좋은 내용의 기사를 한 번만 보고 버리면 머리에 남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저장해 두었다가 시간이 나는 대로 반추해서 소화를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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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꼭 샤프펜슬을 사용해 중요한 구절이나 키워드에 밑줄을 긋습니다. 성격이 털털한 편이지만 꼼꼼히 책에다 샤프펜슬로 밑줄 치는 것을 보고 아내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들이 밑줄을 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책은 도리어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도 좀 이상한 버릇입니다. 그래서 책을 소중히 하고 예를 갖추며 읽는 방법의 하나로 샤프펜슬을 사용합니다. 그 책을 다시 읽을 때는 밑줄 친 부분만 읽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무척 도움이 됩니다. 책을 이해하는 정도가 깊어지는 것도 중요한 소득입니다.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에는 물론 연필을 사용해서 필기를 했습니다. 주로 국산 연필로 동아연필과 문화연필을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칼로 연필을 깎을 때면 나ant결이 달라서 한쪽은 잘 깎이지도 않고 다른 쪽은 뭉텅 떨어져 나가 애를 먹은 때도 많았습니다. 이따금 일본 Tombow사의 잠자리표 연필을 사용한 기억도 납니다. 잠자리표 연필은 촉감도 좋고 심이 강해서 잘 부러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좋아했습니다. 연필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지우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연필 끝에 달려 있는 지우개는 성능이 별로 안 좋아 지우다 보면 종이가 찢어지거나 지운 후에도 흔적이 남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구점에 가서 지우개를 찾아보니 일본제가 많습니다. 국산 지우개는 예전 연필처럼 경쟁력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합니다.요사이 새로 추가된 문구가 있는데 바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은 사용한 지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합니다. 볼펜의 편리성 때문에 밀려난 만년필입니다. 하지만 스케치나 일러스트용으로 만년필을 다시 사용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구입한 만년필은 독일제 LAMY인데 가격 대비 성능이 아주 좋다고 해서 샀습니다. 스케치할 때 부드러운 감촉이 아주 좋습니다. 스케치만 하기에는 아까워서 요새는 가끔 차트 작성할 때도 만년필을 사용하곤 합니다. 어떤 환자는 내가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을 아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만년필을 사용하는 의사선생님은 처음 보는데요.”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내가 사용하는 문구류를 나열하고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색연필은 국산 문화연필, 샤프펜슬은 미제, 지우개는 일제, 만년필은 독일제. 세계 각국의 문구가 내 책상에서 저마다 존재가치를 자랑하고 있으니 필기구 만국 박람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세계의 경제가 얼마나 밀접하게 돌아가는지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오늘따라 내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필기구들이 더욱 정답게 느껴집니다.
유능화
경복고, 연세의대 졸업. 미국 보스톤 의대에서 유전학을 연구했다. 순천향의대 조교수, 연세의대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서 연세필 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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