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강제주의, 정말 법률 약자를 위한 것인가?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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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강제주의, 정말 법률 약자를 위한 것인가?

2014.12.23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사람은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아니하고는 본안에 관한 소송행위를 할 수 없는, 이른바 변호사 필수 변론제도(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는 법안(민사소송법 일부 개정안, 의안 번호 1912394)이 제출됐습니다. 대법원(상고심)에 소송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대리인을 선임해서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 법에서 헌법재판에서만 꼭 변호사가 있어야 합니다.

법안 제출 이유를 “민사소송법의 당사자주의에 의해, 소송기술이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실상 소송 결과가 좌우되어 소송기술이나 경제적 능력이 모자란 당사자가 불이익을 겪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에 따른 불이익에서 당사자를 보호하여 실질적 당사자 평등을 실현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형사소송법은 형사사건 중 법정형이 일정한 기준 이상이면 변호인 없이 재판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여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한다. 이처럼, 민사사건에서도 일정한 사건에서 변호사의 변론을 의무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당사자 평등을 실현하여 국민의 권익을 보호함과 아울러 재판심리의 충실화, 판결의 정당성 확보를 통한 법치주의 확립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제안 이유로 보면 소송기술이나 경제적 능력이 모자란 당사자가 불이익을 겪으니 이를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변호사 강제주의는 대한변협이 ‘변호사 2만 명 시대를 맞아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을 늘리고, 청년 변호사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서민들에게 질좋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일거리 늘리기 대책으로 추진해왔습니다. 현 협회장의 공약이고, 다음 변협 회장 후보로 나온 사람도 이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윤상현 의원을 대표로 모두 14명(염동열 문대성 조원진 정용기 노철래 원유철 안홍준 안덕수 김종태 홍문표 박덕흠 이우현 민병주)이 공동 발의했습니다. 발의한 14명 의원에는 변호사 출신이 보이지 않는 것도 언뜻 이상해 보입니다. 이 법안은 변호사를 반드시 선임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른바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이 나올 게 뻔할 것이어서, 이를 뛰어넘을 법 논리와 현실 당위성을 설명해야 할 것인데 말이죠.

19일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11월 11일 제출된 법안인데 벌써 공청회가 열린다는 것도 이례입니다. 현재 법무사는 소송서류 제출을 대행하고, 변리사는 특허법원과 대법원에서 특허소송을 대리하고 있으니 변호사 강제주의와 관련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들 단체의 토론자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소관 상임위가 법사위라는 것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다른 법률은 ‘자구 심사’를 빌미로 해당 상임위를 지난 뒤 법사위를 거쳐야 합니다.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위가 법사위인지라 한 단계 더 거치는 절차가 없습니다. 법사위만 통과하면 곧바로 본회의로 넘어갑니다. 법제사법 관련 법안은 다른 것에 비해 쉽게 본회의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고 사건이 너무 많아 대법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고를 제한해야 한다.’하면서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법안의 속내는 ‘상고사건 줄이기와 변호사 일거리 늘리기’이면서도 겉으로는 ‘당사자의 불이익을 막고 소송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말로 포장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법무사협회는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요즘 변호사 강제주의, 상고법원 설치와 같이 사법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자주 보입니다. 판사가 국회에 참 자주 보인다는 쓴소리도 있더군요. 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법률소비자인 시민이어야 합니다. 자기 이익을 시민이 바라는 정의라고 분장한 것은 아닌지 잘 지켜봐야 합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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