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부의 겨울 이야기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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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농부의 겨울 이야기

2014.12.16


겨울에는 여름철에 비해 마당에서 할 일이 적은 게 사실이지만 아무 할 일도 없이 마냥 노는 것은 아닙니다.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꽃가지들을 베어 내는 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잡초를 뽑는 일, 봄을 위해 꽃씨를 뿌리는 일 등등, 사람의 손을 기다리는 일이 제법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온 눈에 대비하지 못한 탓으로 블루베리 밭 천정 방충망이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을 것 같아 마음 졸여야 했습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마침 날씨가 온화하였기에 모처럼 마음을 내어 천정의 방충망을 걷어서 말아두었습니다. 백여 평 크기의 밭인데 겨울 눈 오기 전에 걷었다가 봄에 꽃들이 벌의 도움으로 수정을 한 후 다른 벌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시 닫아주는데 이 방충망을 열고 닫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걷어서 말아둔 것을 다시 풀어서 덮어씌울 때가 더 어렵습니다. 워낙 바람이 많은 데다 재료가 하우스 용 비닐과는 달리 촘촘하게 짜인 망이라 이음새와 모서리에 틈이나 구멍이 많이 나기 때문에 벌레의 침입을 방지하려면 매번 튼튼한 실로 틈과 구멍을 메워줘야 합니다. 망 안에는 낮은 사다리, 망 밖에는 큰 사다리 등 사다리를 옮겨가며 일을 해야 하는데, 집사람과 둘이서 쉬엄쉬엄 해서 사나흘이 족히 걸립니다. 처음에는 면으로 된 굵은 실을 사용했는데 실이 약해서 바람으로 인해 생긴 틈으로 벌레뿐 아니라 새까지 떼를 지어 들어와 블루베리를 쪼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튼튼한 플라스틱 실을 구해 와 전반적으로 다시 꿰매곤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꿰매 놓은 것을 겨울에 도로 다 풀어야 하니 좀 억울하다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방충망의 틈과 구멍을 막을 때는 새 때문에 몇 번씩이나 거듭 꿰매야 했는지 모릅니다. 참새와 까치의 중간 쯤 되는 제법 큰 새들인데 이름은 모르지만 특히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놈들입니다. 이들은 매우 영리해서 우리가 틈을 막는 것을 멀리서 보다가 일을 끝내고 나오면 그 부분에 가서 틈을 내려고 기를 쓰다가 조금이라도 열고 들어갈 수 있으면 한 마리가 들어가고 다른 놈들이 또 따라 들어가서 그 안에서 활공을 하곤 합니다. 이들의 퇴로가 될 양쪽 출입문을 열어 놓고 소리를 지르면서 쫓아내기를 수없이 해야 했습니다. 블루베리 밭 속에 새들의 모습이 보이면 쫓아내는 것도 문제지만 우선 어디로 들어왔는지를 샅샅이 찾아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망 속에 새들이 한 마리라도 보이면 우리는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블루베리 밭을 지키기 위한 새와의 전쟁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름내 어린 매화들을 노루로부터 지키기 위한 전쟁을 치렀는데 이제 새와의 전쟁도 치러야 하니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땅속에는 굼벵이가 나무의 뿌리를 갉아먹어서 나무들을 죽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나무에 굼벵이 약을 쳐주어야 합니다. 옆 농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서로운 동물로 알았던 꿩도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쪼아 먹어서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꿩은 벌레나 떨어진 견과류 정도나 주워서 먹는 이로운 동물로만 생각해왔는데 인간의 작물에까지 피해를 준다니 그 곱고 화려한 모습의 이미지에 웬만큼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노루나 새, 꿩들이 자연의 일부로 산천을 장식할 때는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막상 인간과의 이해관계가 충동될 때는 미워지는 게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일요일에 방충망 천장을 일단 걷었으니 눈으로 인한 피해 걱정은 없지만 걷어서 감아 놓은 방충망이 강풍이나 태풍으로 인해 헝클어지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 하면 또 일거리가 많이 생길 수도 있어 약간 조바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떨어지면 방충망 벽에 구멍이 나는 등 손상이 생기고 또 떨어진 방충망을 다시 위로 올리는 것도 작업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주말 농부이기에 여전히 일의 노하우가 모자라 농삿일 매듭짓는 것이 신통치 않은 경우가 종종 나오고 있답니다. 이런 단순한 일에도 기술과 정성이 들어가야 탈 없이 농사가 되는 것임을 항상 깨닫습니다. 작은 블루베리 밭을 가꾸다가도 우리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매일같이 별 생각 없이 먹는 농산물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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