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주민들께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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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 주민들께

2014.12.08


이렇게 말해서 미안합니다만, 우리나라가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왜 얻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당신들의 ‘맘보’를 보니 느낌이 옵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하필 댁의 아파트에서 ‘재수 없는’ 일이 터졌을 뿐이라는 걸. 다른 아파트 주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요. 그러기에 너도나도 ‘자살 부추기는 사회’ 아닌가요.

남이 잘못하면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냐고 분개하지만 내가 겪으면 똑같이 야비해지는 게 인간이니까요.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술 더 뜰걸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세월호’의 공범 아닌가요. 

댁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78명과 환경 미화원 등 총 106명의 노동자를 엄동설한에 쫓아내기로 하셨다구요. 생뚱맞게도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라는 말이 이 대목에서 떠오르다니, 나 원 참. 여튼 참 시원도 하시겠습니다.

제대로 ‘갑질’을 하셨습니다만, 피해자 집단에게 보복을 가하다니 엄밀히는 댁들이 ‘을’이라는 소리로 들리네요. 남보다 많이 가지고, 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바늘 하나 꽂을 데 없이 솔아 빠져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 ‘을’ 아닌가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닌 사람을 두고, 타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을 통상 ‘을’이라고 하지요. 원래 그러실 분들이 아닌데 모지락스런 추위가 갑자기 닥치니 마음도 덩달아 모지락스러워진 거겠죠. 안타깝습니다.

하기사 찬란한 계절 4월조차도 ‘잔인한 달’이라 하고, 실제로 우리는 올해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잔인한 4월을 겪었습니다. ‘세월호’로 시작된 새봄의 아픔이 사계절 내내 가슴을 후벼 파더니 당신네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 자살로 고통의 대미를 장식하는군요.

우리끼리 서로 다독여도 속울음은 그대로일 판에, 절렁대는 거리의 구세군 냄비 종소리만 들어도 가난한 사람들로 가슴이 아릴 세모에 어쩌면 그리 잔인한 처사를 할 수 있답니까.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다는 분신을 택하게 만든 그 입주 노파는 오히려 당당해져서 어쩌면 요즘 주민들의 ‘소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세상 논리는 이따금 해괴하게 돌아가는 법이니까요.

“원래 일을 잘 못해서 연말에 용역 업체를 바꿀 예정이었다. 경비원 분신과는 관계없다.” 라고 했다지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오죽이나 일을 못했으면 잔소리로, 모멸로 '죽여버렸을까요.' 저는 아파트 경비원으로서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이 ‘죽을죄’라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이유라면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오해받습니다. ‘자르려고’ 했던 계획도 거둬들여야 할 판이지요. 여러분은 잘 모르실 테지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은 주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모르긴 해도 처음에는 뉴스를 보고 여러분들도 많이 놀라고 가슴 아파하셨을 겁니다. 그런 독한 노파와 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수치스러워했을 것 같아요. "그 경비원, 일도 제대로 못하더니 잘 죽었다" 라고 말한 분은 아마 한 분도 없었을 겁니다. 그 경비원이 누군지도 대부분은 몰랐을 거구요.

잔인한 노파로 인해 한동안 모두 죄인인 양 숨죽이고 있는데 동료의 분신으로 경비원들이 ‘이때다’ 하고 주민들에게 그간의 불평불만을 터뜨렸을 거라는 것도 짐작은 갑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슬슬 달라지고 괘씸해졌겠지요? '지들이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 감히 어디서' 싶었겠지요? 안 그래도 신경이 날카로운데 그런 식으로 달려드니 '확' 다 잘라 버리자 싶기도 했을 겁니다.

주민 대표, 근로자 대표들이 설왕설래,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열을 받다 결국은 이런 보복성 대응을 하게 된 거겠지요. 물론 주민들 중에는 여전히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며 죄스러워하는 분이 있을 테지만 그런 분들일수록 목소리를 안 내는 편이죠.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우위에 있다면, 내가 힘이 있는 처지라면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권투 선수 등 운동선수는 아무리 화가 나도 일반인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선수들의 룰이라고 합니다.

‘승질’대로 했다간 상대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게임'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랍니다. 그 부분에 관한 한 ‘강자’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봐주는 거지요.

아이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부모가 제 분대로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아이는 부모에 대해 약자이자 완전 의존적 존재니까요. 신체적, 정서적으로 잘못하면 죽을 수가 있는 것이 아이들이니  아무리 난리를 쳐도 부모가 져 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누구와 말로 대거리 하는 것을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며, 글로써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제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과 글이 제게는 남들 못 가진 힘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저한테 당하고 난 상대는 ‘어디 두고 보자’며 앙심을 품고 저를 이길 수 있는 자신의 무기를 이빨과 함께 갈겠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누구를 도울 때조차도 상대가 밉상으로 굴 때가 있지요. 공연히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시비를 걸고 때론 원망까지 하면서 봉사자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 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를 대고 싶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경비원들이 시원찮게 굴어도 그 사람들은 약자입니다. '을'의 처지입니다. 그러니 주민들이 감싸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그래야 합니다. 안 그러면 그 사람들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다치지 않았냔 말입니다.

한 사람 불귀의 객 만들었으면 됐지, 78명의 원한, 100여명의 원망을 어찌 자초하는가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업을 짓지 말라고 하지요. 과보가 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조차도 척박한 환경에 처하면 가시를 낸다고 합니다.

같이 대거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갑'인 내가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똑같이 분을 냅니까.  앞서도 말했듯이 그런 행동은 내가 ‘을'이라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아량을 베푸십시오. 원한을 사지 마십시오.  인간답게 사는 일이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엄동설한입니다. 내 배 부르고 내 등 따숩다고 남들도 그러려니, 아니면 남들은 굶어 죽든, 얼어 죽든 내 몰라라 하지 마십시오. 남들도 사람입니다. 배고픈 것, 추운 것 똑같이 느끼는 사람입니다. 남의 눈에 눈물을 내지 마십시오. 이번 일은 눈물로도 모자라 피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에 인증 서명하는 꼴입니다.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갑도 을도 실상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제발 결정을 번복하십시오.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십시오.

빈정대듯 말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글 쓰면서 이렇게 화가 나 보기는 처음입니다.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삭이느라 이제서야 끝맺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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