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덜컹’, ‘울퉁불퉁’ 없는 도로가 그립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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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울퉁불퉁’ 없는 도로가 그립다

2014.12.03


40여 년 전 병원 구역 내 차도에서 처음 ‘과속방지턱’을 보았습니다. 필자가 외국생활을 보내고 귀국해 병원에서 본 생소한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병원 책임자에게 과속방지턱을 언급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초(秒)를 다투는 급한 마음으로 병원에 오는 응급 환자나 앰뷸런스가 과속방지턱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는’ 절박감으로 괴로워할 수도 있고, 덜컹거리는 물리적 충격으로 환자가 더욱 고통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과속방지턱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과속방지턱이 우리 도로 문화의 아이콘이라도 된 양 도로 곳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특히 ‘양재천 둑변 도로’에는 이 아이콘이 밀집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서울 강남 양재천 변에 조성된 휴식 공간은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양재천을 따라 높이 쌓아 올린 둑길을 걷는 기분도 일품이지만, 둑과 양재천 사이에 조성한 휴식 공간은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입니다. 둑은 근처에 밀집된 아파트촌을 조금이나마 가려주는 자연 가림막 기능도 하면서 방음벽 역할도 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계절 따라 변하는 나무들이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더할 나위 없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지요. 이 공간의 최대 수혜자는 양재천 주변 주민들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양재천 변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기려면 주택단지와 둑 사이의 ‘둑변 2차선도로’를 지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둑변 2차선도로’는 둑을 따라 죽 늘어선 가로수가 운전자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드라이브 길’이기도 하지만, 신호등이 없어 지름길로서도 많이 이용하는 도로이기도 합니다. 주행속도가 시속 30km로 서행해야 하는 도로인데도 많은 운전자가 출퇴근길로 애용하며 과속 질주를 합니다. 그러니 주민들의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지요. 결국 민원에 약한 지자체가 여기저기 과속방지턱 겸 보행자 건널목을 설치하다 보니 약 2km 되는 ‘둑변 도로’에는 50~100m 간격으로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그 길로 차를 몰다 보면 방지턱 앞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가 다시 발진 페달을 번갈아가며 밟느라 ‘덜컹덜컹’의 연속입니다. 차가 발진할 때 연료 소모량이 가장 많기도 하지만 그때 뿜어져 나오는 매연도 상대적으로 많다는 문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러한 과속방지턱은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음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 널려 있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근래 국도나 지방도로를 이용하면서 ‘아, 여기까지 침범했구나!’ 하는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우리나라 도로는 울퉁불퉁 파이고 덧씌운 참상(慘狀)이 이제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지경입니다. 주행 중 갑자기 나타난 웅덩이를 피하려다 발생하는 차량 사고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부실 공사가 얼마나 만연하기에 이 지경이 됐을까 생각하면 우리의 자존심도 무척 상합니다.

요즘 서울 시내 거리는 온통 도로 정비 공사 중입니다. 그러잖아도 시내 교통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데 도로 공사가 교통 혼잡에 크게 한몫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해외에서 생활할 때나 선진국 도시를 방문할 때 그곳에서 방지턱도 보지 못했거니와 도로 공사 장면을 본 기억은 두어 번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도로 공사에 적용하는 토목공사의 기준이나 아스팔트 같은 건축자재의 재질에서 차이가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 응급 도로 공사가 왜 이렇게 빈번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어느 지인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고위 공직 생활을 마친 지인을 만나 안부 인사를 나누었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응급 공사를 따내어 중소 건설사에 넘겨주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순간 필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필자의 전문 분야도 아니고 지인도 건설업과는 거리가 먼 직종에 있던 터라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필자의 표정을 읽은 지인은 덧붙여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른바 ‘응급 공사’는 작은 건설사에서 도맡아 하는데, 공사 발주처가 복잡한 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건설사에 발주한다고 합니다. 바로 ‘자기’가 발주처에 가서 일감을 얻어 건설사에 넘겨주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며칠 전 터진 토목공사 사건의 응급 복구 사업도 ‘자기’가 해결해주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응급 상황에서 응급조치도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먹이사슬로 인한 부실 공사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덜컹덜컹하는 과속방지턱은 시쳇말로 각종 행정 규제 폐단의 물리적 징표를 보는 듯싶고, 울퉁불퉁한 도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병의 증상을 보는 듯했습니다.

중국 초상미술사에서 ‘화가가 너무 작고 사소한 것에 급급하면 크고 중요한 것을 잃는다(畵家勤毛而失貌)’는 화풍(畵風) 아래 세심하고 정직하게 그려야 할 대상을 과장과 허식(虛飾)으로 장식한 시대가 있었던 사실이 생각납니다. 반면 조선 왕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한 올 털, 한 올 머리카락을 혹시라도 다르게 그리면 즉시 다른 사람이 된다(一毛一髮少或差殊 卽便是別人者)”라는 기록이 있어 세심하고 정교함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 정교함에 묻어 있는 정직함을 추구한 가르침을 모든 공사장에서 마음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젠 ‘덜컹덜컹’하는 방지턱도 없고, ‘울퉁불퉁’하지 않게 공사한 매끈한 도로 위를 달릴 정도로 수준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참골무꽃 (꿀풀과) Scutellaria strigillosa

찬바람 따라 밀려오는 파도에 한기(寒氣)가 가득하고 서산에 기우는 해처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섣달이 다 되는데 생명의 숨결이 말라붙은 듯한 늦가을 바닷가 모래밭에 해맑은 청잣빛 꽃 한 송이를 매단 참골무꽃. 7~8월 한여름에 피어나야 할 꽃인데 그 좋은 시절 무엇하고 이제야 피었을까? 함께 피어나는 꽃망울도 없이 달랑 한 송이!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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