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헝가리 남자의 하이든

11월의 두 번째 이야기

어느 헝가리 남자의 하이든

 

 

“암 쉴러테아터 Am Schillertheater"

 

베를린에 머물던 시절 내 집은 서쪽의 쉴러테이터 근처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길거리 주소를 불러주면 대개 잘 찾아가지만, 개중에는 아삼모사 잘 모르는 기사들도 있다. 그러면 자신 있게 이렇게 외치면 그만이다. “암 쉴러테아터(쉴러극장 옆이요)”.

 

처음에는 무슨 구청의 사회복지 체육관 같은 건물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극장’이었다. 지금은 동베를린 중심가에 있던 국립오페라(슈타츠오퍼 운터 덴 린덴)가 여기 세들어 살고 있다. 원체 돈 없는 베를린이라 슈타츠오퍼의 보수공사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데, 작년에 집 근처에 가봤더니 감회가 새로웠다. ‘잠깐, 지금 여기서 살았으면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이 집 앞에서 5분 거리에?...’ 뭐 이런 실없는 생각도 떠올랐다. 
 

 
(서베를린에 위치한 쉴러 극장. 원래 연극 공연장인데 지금은 베를린 국립오페라가 임시로 들어와 사용 중이다.)
 

베를린에도 대형서점이라는 게 있다. 두스만(Dussmann)은 건물 전체를 서점으로 쓰고 있는 초대형 북스토어인데, 특히 재즈와 클래식 매장이 압권이다. 수 십만장의 CD를 산처럼 쌓아놓은 클래식 매장은 정말이지 이 세상 모든 음반을 다 진열해놓은 것만 같다. 게다가 휴대용 플레이어로 CD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다. 보통은 매장에서 개봉해놓은 최신 음반을 한 두 장을 들어보는 게 보통이지만, 별난(?) 사람들은 포장된 CD의 비닐을 북북 뜯고는 자신이 원하는 음반을 직접 들어보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때 나는 지휘자 아담 피셔의 음반을 찾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바그너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없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 뿐이었다.

 

그해 여름 바이로이트에서 아담 피셔(Adam Fischer) 지휘의 <니벨룽의 반지>를 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원래는 주세페 시노폴리가 지휘봉을 잡았어야 했지만 시노폴리의 급서로 피셔가 대신 왔다. 그는 빈 국립오페라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오페라 지휘자 아닌가. 4부작의 마지막 <신들의 황혼>에서 기어이 ‘지그프리트의 장송행진곡’이 흘러 나왔다. 저역을 휩쓸 듯이 몰아가는 피셔의 무겁고 격정적인 지휘가 마음에 불을 질렀다. 순간 핑하고 눈물이 돌았다. 어디 가서 소리라도 크게 지르고 싶었다. 스타 지휘자가 아니라고, 그저 이반 피셔의 형일 뿐이라고 시큰둥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바이로이트의 한적한 골목길 서점에서 사인회를 열고 있는 마에스트로 아담 피셔의 소탈한 모습)
 

지난 해 빈에서 다시 피셔를 만났다. 10여년 만이었다. 이번엔 말러였다. 세상에 ‘아담 피셔의 말러’라니. 그건 아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말러일 것이다. 피셔의 말러는 음반도 없고, 방송 레코딩 기록도 없으며, 아마 빈 토박이 아니라면 들어본 적도, 아니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는 말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드디어 최고의 말러와 대면했다. 지극히 빈적이면서도 보헤미아의 정서가 넘실대는, 그 복고풍의 황금빛 유려함이 주는 지독히도 깊은 로맨티시즘 속으로 순식간에 훅하고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베를린의 두스만 음반매장에서 깨달은 건 이 세상의 클래식 음악이 음반이라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 동시에 또 전혀 무관하지도 않다는 뭐 그런 복잡한 현실이었다. 어제 들었던 바렌보임의 슈만 교향곡이 똑같은 지휘자, 똑같은 악단의 연주임에도 음반 속에서는 전혀 다른 해석으로 흘러나왔고, 듣도보도 못한(?) 연주자와 지휘자들이 로컬 무대에서는 이미 엄청난 대예술가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모습도 수 차례 보았다. 하긴 세상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속세의 유명세와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거니와, 로컬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대가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J.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고별’, 아담 피셔 지휘, Danish Radio Sinfonietta)
 

아담 피셔는 헝가리인으로 평생을 빈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제국의 깊숙한 전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소리의 결은 묵직하면서도 지극히 유려하고, 또한 절절하게도 전통적이다. 무지크페라인잘처럼 잔향이 긴 특수한 홀을 만나면 거기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최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가 평생을 지휘한 공간인데 더 말해 무엇하랴.

 

작년 빈에서 그의 말러를 듣고는 그제서야 ‘피셔의 바그너 음반’을 찾는 작업을 공식적으로 그만두었다. 음반으로 들어 뭐하겠나. 요즘 음반과 오디오는 실연보다 오히려 소리가 더 좋다. 그렇게 고해상도로 지나치게 정교히 소리를 재생해봐야 그때 들었던 그 사운드, 느꼈던 그 감정은 결코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소릿결, 그 질감, 그 감동만을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요즘은 피셔의 하이든, 모차르트를 즐겨 듣는다. 구식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너무나 소중한 그의 음악들이다.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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