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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없는가?’
2014.11.07
지난 30여 년간 TV 뉴스 시간을 비롯해 여러 대중매체에서 차선을 넘나들며 난폭하게 달리는 덤프트럭 같은 대형 차량과 식별하기 어려운 후면 차량 번호판에 대한 고발성 보도를 여러 차례 봤습니다. 그런데 주무 행정 부서가 지금까지 마이동풍 격으로 일관되게 못 보고 못 들었다는 듯 바뀐 게 없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얼마 전 일입니다. 필자가 오후 3시경 도로 규정에 따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뒤차들이 쏜살같이 추월해 앞으로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때 대형 차량인 탱크로리가 엄청난 ‘고의성’ 경고음과 함께 우측에서 추월하면서 필자의 차에 큰 손상을 입히더니 멈추지도 않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필자는 반사적으로 그 차량의 번호판을 식별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보았으나, 새까만 차량 번호판에서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그것도 대낮에 ‘뺑소니 차량’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허탈하기 그지없었습니다<(참고로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조차도 그걸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몸이 다치지 않고 그나마 차량 손상만으로 위기를 넘긴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위로할 뿐이었습니다.필자의 사고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형 차량의 난폭 운전, 차량 번호판의 식별 불능 상태 등이 너무하다며 담당 기관의 행정력 부재에 대한 ‘성토’를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운송 영업용 차량의 전면에 부착된 번호판 상태는 식별이 가능한 데 비해, 후면의 번호판은 식별하기 쉽지 않도록 주변에 밧줄을 얼기설기 묶어놓아 의도적으로 시야를 가린다고 했습니다. 차량 번호판을 일부러 더럽게 방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거리에서 번호판을 밝게 비추어야 할 조명 장치는 ‘우연히’도 기능을 상실한 경우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대형 차량들이 난폭 운전을 하는 것과 식별하기 어려운 후면 번호판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들 했습니다.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1980년대 국제 학회 참석차 멕시코 시에 갔을 때 일입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라 일본 동료 교수와 함께 앞좌석에 앉아 한눈에 펼쳐지는 이국적 풍광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옆자리의 동료 교수가 “아니 이 나라는 교통경찰도 없나?”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기에 그를 쳐다봤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에는 불평보다 경멸의 눈초리가 가득했습니다. 필자를 보며 동의를 구하듯 그는 우리가 탄 버스 앞에서 달려가는 대형 트럭에 부착된 차량 번호판을 가리킵니다. 번호판은 찌그러져 있는 데다 몇 년간 ‘물맛’을 전혀 보지 못했는지 새까만 때가 켜켜이 앉아 있었습니다. 번호판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좀 심하다 싶었습니다. 그는 멕시코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저런 차를 방치하느냐며 심하게 질책했습니다. 순간 저는 못 들은 척하며 그와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질책에 동의하며 함께 비난하기에는 우리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제 발이 너무 저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일 아우토반에서 겪은 일도 생각났습니다. 독일 어느 한적한 쉼터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가 차창을 조용히 노크하기에 밖을 내다보니 한 중년 신사가 필자에게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냐며 자기가 의사인데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친절히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쉬어 갈 뿐이라며 그의 호의에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다시 돌아와서 필자의 차량 후면 번호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나가 보니 번호판이 지저분하게 더러워져 있어 정말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눈과 비가 뒤범벅된 길을 주행하여오다 보니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번호판이 엉망인 상태였습니다. 필자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번호판을 닦자, 그 신사는 순찰차에 걸리면 예외 없이 과태료를 많이 물게 된다는 사실을 웃는 얼굴로,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상기시키면서 자기 차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 오늘날의 우리 차량 번호판 관리 상태를 보면서 30여 년 전 멕시코에서처럼 “한국에는 교통경찰도 없나?” 하며 질타하리라 생각을 하니 ‘닭살’이 돋았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한 중견 언론인이 해외 여러 나라를 답사하고 돌아와서 “우리나라는 변화가 참 많은 듯한데 정작 변해야 할 것은 변하지 않고, 그들은 별반 변화가 없는 듯 싶지만 꾸준히 변하고 있다”라고 한 말과 함께 그 옛날 일본 동료 교수의 일그러진 얼굴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찰차 앞을 보란 듯이 폭주하며 지나치는 차량을 먼 산 바라보듯 하고, 주차장에 정차한 차량들의 번호판이 교통법규에 어긋남이 없는지도 체크하지 않는 경찰은 없는 거나 진배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변한 듯한데 정작 변하지 않은 것’이 시쳇말로 적폐(積弊)의 한 모습인가 싶습니다. 근대화를 상징하는 그럴듯한 우리네 도로이지만 문화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국민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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