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교육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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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교육

2014.10.29


몇 해 전,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친구가 당시의 학교 분위기를 설명하며 이런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요즘은 엄마들이 학생 대신 수강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아.”

“애들은 뭐하고 엄마들이 나서서 수강 신청을 하니?”

“엄마들이 수업을 다 꿰고 있어서 그래. 어느 교수는 학점을 잘 주고 어느 교수 강의는 꼭 들어야 하고 등등을 말이지."

그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긴 말이었는데, 얼마 전 방송사 기자로 있는 친구가 “요즘 엄마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수습기자들이 경찰서에 상주하면서 업무를 배우잖니? 그런데 어떤 친구는 엄마가 경찰서로 출퇴근을 시켜준단다. 그런 친구들이 제대로 기자 노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한탄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한 자녀가 야근을 하면 회사로 전화를 해서, ”왜 늦게 귀가시키느냐?”, 출장이나 연수를 가야 하면 “우리집 아이는 밖에서는 못 잔다.” 등등 도를 넘는 부모의 행동 때문에 급기야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입사원 부모들이 회사로 전화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고 하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부모의 오지랖은 끝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도 너무 한다 싶긴 해도 여기까지는 그냥 얼굴을 찌푸리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자식 사랑이 공정해야 하는 입시 경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교사와 공모한 가짜 스펙으로 자식을 유명 한의대학에 합격시킨 어머니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남 지역에서는 다 이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갖고 이럽니까?”라고 항변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이렇게 썩었는데 왜 나만 갖고 문제를 삼느냐는 것이겠지요.

강남에는 꽤 많은 입시 컨설팅업체가 영업중입니다. 에듀푸어라는 신조어를 양산한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엔 특목중, 특목고, 대학 입시 수시전형 등등 약간의 교육열만 있어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관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디어디 컨설팅 업체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면 온갖 스펙에 대한 소개와 스펙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대학 입시를 정시모집으로 돌파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컨설팅 업체가 제안하는 스펙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경시대회는 과목별로 얼마나 많은지, 듣도 보도 못한 봉사 단체와 각종 봉사상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정부 부처의 장관 명의 또는 지자체장 명의로 수여되는 표창장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스펙에 대한 소문은 또 얼마나 무성한지 소설을 써도 동네 별로 열 권씩은 나올 겁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생각에 입시생을 둔 부모들은 가슴만 졸입니다.

초중고등학생이 참가하는 각종 경시대회 및 봉사대회를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곳을 보면 죄다 정부 부처 또는 산하기관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나랏일도 바쁠 텐데 아이들 스펙에 왜 그리 관심을 갖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교육이 백년지대계이니 너도 나도 관심을 갖고 인재를 선발해서 상을 주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모든 대회가 일부 교육관련 업체의 돈벌이 또는 영향력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할거면 제대로 해서 가짜 스펙을 양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작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명백한 출제오류에 대한 수정요구조차도 전임 한국 교육과정평가원장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묵살당하지 않았습니까?  교육과정 평가원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잔여 임기를 채우기 위해 전임 원장이 소송을 불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이런 분들이 우리 교육을 주무르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의의 재수생과 불합격생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고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전임 원장은 책임지기는커녕 유감표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분이 또 언제 공직에 나오게 될지 두렵습니다.

언론 역시 교육 문제를 놓고 자신의 잣대에 맞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통합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한 언론사는 현 정권의 숨은 속내가 드러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얘기를 하고 또 다른 언론사는 질 좋은 교과서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에 보수 성향의 교육부 장관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합니다. 교육은 정치가 아닌데 정치논리가 앞섭니다. 무상급식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만의 싸움입니다. 정작 학부모들에게 시급한 것은 무상급식보다는 공교육이 살아나서 사교육비 부담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엉뚱한 데 공력을 낭비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학원비도 모자라 스펙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지경이 됐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 사회의 희망은 젊은 청춘들입니다. 어른들이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절대 물드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젊은이들이 정의와 이상을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남이 발표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상을 받고 대신 써준 글짓기로 상을 받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한의대에 진학한 그 젊은이 같은 가련한 청춘이 많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언뜻 언뜻 들려오는 사건 소식을 접하다 보면 자꾸 회의가 밀려옵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외우다시피 공부했던 민태원 선생의 청춘예찬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상(理想)! 빛나는 귀중(貴重)한 이상! 그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特權)이다. 그들은 순진(純眞)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罪惡)에 병들지 아니하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遠大)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自信)과 용기(勇氣)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理想)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은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4·19로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선배의 뜻을 이어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젊은이들, 기성세대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그 젊은이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살다보니 세상이 그다지 녹록하지도 않고 이상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자녀들에게는 청춘의 꿈을 심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우리의 자녀들이 다들 엄마들의 치마 속에 숨어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송악 (두릅나무과)  Hedera japonica Tobler

완도의 상황봉에서 만난 송악(松)의 꽃입니다. 북상 중인 태풍 봉풍의 영향으로 가없이 이어지는 너른 바다는 부옇게 가물거리고 밀려오는 거센 바람에 몸 가누기조차 힘들었지만 크고 작은 섬 200여 개를 거느리며 남해에 우뚝 솟은 완도 오봉산의 정상을 올랐습니다. 태풍이 북상 중이 아닌 쾌청한 날씨였다면 풍광이 참으로 아름다웠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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