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조합·추진위 흔들기’… 활기 찾는 정비시장에 ‘찬물

서울시의 ‘조합·추진위 흔들기’,

활기 찾는 정비시장에 ‘찬물

전문가 “시의 구역해제 숫자늘리기 본격 시작된 것”
‘코디네이터’ 파견 주민갈등 해소·맞춤형 지원도

 

 

 

서울시가 시내 조합·추진위 343곳 전체를 대상으로 이른바 ‘2기 출구정책’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조합과 추진위원회가 정조준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1기 출구정책의 타깃이 추진주체가 없는 정비예정구역의 해제였다면, 이번에는 조합·추진위의 사업 중단 여부가 초점이다.

 
특히 시가 직접 각 구역의 사업추진 가능성 조사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조합·추진위에 대한 압박 수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시는 지난달 15일 ‘추진주체가 있는 343개 구역 현장조사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오는 11월 말까지 약 두 달간 조사를 완료, 각 구역의 향후 사업진로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시, 추진주체 있는 정비사업 구역 343곳 전수 조사 추진
우선 시는 조합·추진위 등 추진주체가 있는 정비사업장 343곳에 대한 전수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시가 직접 개입해 오랜 기간 사업이 정체되고 있는 조합·추진위들을 추려낸 후 사업중단 및 구역해제로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시가 직접 전수조사에 나선 것은 상당수 구역이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장기 정체 중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1기 출구정책에서는 추진주체가 있는 곳은 시가 추정분담금을 토지등소유자에게 통보하면, 주민들이 직접 구역해제 동의서를 징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사업추진을 옹호하는 추진주체의 반발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게 서울시 주장이다.


한 마디로 △경기침체 △현금청산자 증가 △시공자의 공사비 증액요구 등의 이유로 사업성이 악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 갈등 → 소송 → 조합장 공석 → 주민 관망 등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 사업추진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시 재생지원과 유용식 주무관은 “현재 정비사업이 시행중인 곳들 가운데는 사업 진척 없이 인건비·관리비 등 비용이 계속 지출되면서 주민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현장들이 많이 있다”며 “이 곳들은 집행부의 전문성 부족으로 사업이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2기 출구정책에서는 시가 직접 나선다. 시와 자치구 공무원이 직접 현장조사를 통해 조합·추진위의 향후 사업방향을 유도한다.

 
표현상으로는 ‘사업방향 유도’지만, 서울시 발표의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사업중단 포커스가 맞춰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는 현장조사를 통해 △구역 내 주민 찬반 갈등 상황 △구역 내 환경적 측면 △주변 지역 현황 △사업정체 원인 △시공자 동향 △자금 관련 사항 등을 조사해 사업방향의 결정 근거로 활용할 예정이다.


조사 과정에서는 정비사업 담당 공무원들이 대규모 총출동한다. 시와 자치구 공무원이 팀을 이뤄 합동조사를 벌여 조합·추진위가 느끼는 압박 수위가 남다를 전망이다.

 


시에서는 재생지원과 14명, 주거재생과 13명, 재정비과 14명, 재생지원센터 9명 등 50명의 인원이 총출동하며, 각 구역별로 자치구 담당자 1명이 추가로 참여한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출구정책 시행 2년 동안 서울시가 온갖 행정력을 총동원했는데도 구역해제의 실적이 형편없자 급기야 대규모 공무원 부대를 정비사업 현장에 투입해 구역해제 숫자 늘리기에 나선 것”이라며 “서울시는 추진주체의 방해 때문에 구역해제가 안 된다는 기존의 시각을 바꿔, 주민들이 정비사업을 염원하고 있다는 현실을 정확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 구역 해결 위해 코디네이터 제도 적극 활용
시는 조사 결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거나 정체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구역은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정체 원인에 따른 맞춤형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파견구역 선정은 선정위원회를 통해 결정되며 우선 사업이 상당히 진행된 곳을 위주로 파견될 예정이다.


1단계 파견 구역 대상지는 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를 받거나 우선 파견이 필요한 구역, 2단계는 조합설립인가 구역, 3단계는 추진위원회 설립 구역 순이다.

 


코디네이터가 파견된 구역에서는 구청장과 합동으로 정체 원인 분석 및 맞춤형 해결방안이 모색되며, 이를 통해 사업정상화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답십리14 등 46개구역 조합 운영실태 조사

 

 

서울시의 사업 옥죄기
서울시가 조합 운영실태 조사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합 옥죄기에 나선다. 2기 출구청책 시행과 아울러 조합 운영의 부조리가 의심되는 46개 현장에 대해 자금 차입·자금관리·예산집행·계약 사항 등에 대한 대대적 점검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시는 지난 15일 주민이 운영실태 점검을 요청한 동대문구 답십리14구역, 성북구 돈암5구역, 월계2구역 등 46개 조합의 운영실태 현장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점검은 서류를 통한 1차 사전점검과 2차 현장조사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이미 1차 서류점검을 마쳤으며, 앞으로 6명으로 구성된 합동 점검반을 파견해 1주일간 서류 점검 때 드러난 부조리 의혹 부분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시는 1차 서류 점검을 마친 46개 조합에서 부조리 의혹 사례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시는 △자금 차입 분야에서 67건 △자금관리 35건 △예산집행 157건 △계약 90건 △조합행정 55건 △정보공개 44건 등 총 448건을 지적했다.


진희선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조합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정비사업의 투명한 진행이 어렵다”며 “지속적인 실태점검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일선 현장에서는 시의 일방적인 사업 옥죄기라며 반발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시의 정책 책임을 조합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출구정책 시행 결과 조합·추진위에서의 구역해제 실적이 형편없자, 운영실태 조사를 대외적 명분으로 시가 직접 나서 ‘살생부’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점을 주민들에게 인식시켜, 정비사업 추진 속도를 늦추는 한편, 장기적으로 소규모 정비사업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이번 운영실태 조사는 시가 정비사업 숨통 끊기에 나섰다는 증거”라며 “운영실태 조사를 받는 곳은 조사 진행 기간 동안 사업을 추진할 수 없을 뿐더러, 주민들의 부정적 시선으로 향후 사업추진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점검 진행 사항을 클린업시스템을 통해 주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며, 현장 점검 결과와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내년 2월 발표할 계획이다.

  

 

업계 “서울시 구역해제 가속화 하려는 속셈”

 

현장 반응
정비사업 업계에서는 시의 이번 전수조사는 구역해제 법적 유효기간을 3개월가량 앞두고 구역해제를 가속화 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시는 지난 2012년 2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를 개정하고 같은해 7월 출구정책을 본격 실행했다.

 
당시 국회는 출구정책의 일환인 ‘도정법’ 제16조의2 제1항 제1호 및 제2호 조항을 제정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한 나머지 지난 1월 31까지만 유효한 한시법으로 묶어뒀다.


‘도정법’ 제16조의2에 따르면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30% 이상이 요청하는 경우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가 가능하도록 정해뒀다.

 
또 추진위나 조합을 해산할 수 있는 토지등소유자 비율은 법적 의결 요건의 최소치인 과반수로 정했다.

 
즉, 추진위나 조합 설립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 과반수가 동의하는 경우 추진위·조합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출구정책에 의한 피해사업장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사업이 잘 진행돼 오던 곳마저도 제도도입 당시 우려했던 출구정책의 폐해 때문에 좌초될 위기에 처해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높은 사업성을 자랑하며 잘 진행돼오던 사업장이 반대파들의 무차별적인 조합해산동의서 징구로 인해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되는 등의 피해를 겪고 있다.

 
출구정책을 담은 법 조항 자체가 사업단계와 상관없이 조합해산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제16조의2제1항 제1호 및 제2호 조항은 지난해 말 오는 2015년 1월 31일까지 1년 더 연장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의 전수조사가 기존 출구정책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이름만 바뀐 것으로, 또 다시 조합·추진위에 불러올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박종필 주거환경연구원 부장은 “문제는 이번 시의 전수조사 대상 343개 구역은 정비사업 추진주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시가 출구전략의 일환인 도정법 16조의2 유효기간을 3개월 남긴 시점에서 사업성이 증명되지 않은 소규모 정비사업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구역해제를 가속화 시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우징헤럴드 이혁기 기자 lhg@hou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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