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감옥 속의 아이들’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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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감옥 속의 아이들’

2014.08.20


요즘 학생들을 보면 참 가엾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의 유머 글 공간에는 공부와 학교생활이 지겨운 학생들의 글과 영상물이 넘칩니다. ‘공부하다’라는 동사에  대해 어떤 학생은  ‘근처에 펼쳐 놓은 교과서를 둔 채 문자를 보내고 군것질을 하고 TV를 보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 2 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 5 6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 8 9등급은 배달을 한다.’는 글도 재미있습니다. 공부를 안 하면 그렇게 된다는 거지요.

학생들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다음 시입니다. ‘가네 가네 나는 가네/학교라는 교도소에/학생이라는 이름을 받고//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네 입네/급식이라는 콩밥을 먹네 먹네/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히네 갇히네//출석부라는 죄수 명단에 올라/교사라는 간수의 감시를 받으며/공부라는 고문을 받고/졸업이라는 석방을 기다리는 우리.’

오죽 학교생활이 답답하고 재미없으면 이런 말을 할까요? 학교생활이 지겹고 재미없기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예전 세대가 지금의 고통과 불편을 참고 견디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지향하는, 이른바 ‘만족 지연의 훈련’이 돼 있던 것과 달리 요즘 학생들은 당장의 불편과 불이익을 참지 못합니다. 더욱이 공부 외에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이 널려 있고, 공부를 하지 않고도 성공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도 크게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 부모나 교사는 그 가능성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 나이에는 일단 다른 생각 하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공부를 해야 하며 최소한의 학력(學歷, 學力 두 가지 다!)을 갖춰야만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사는 데 덜 불편할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자녀나 학생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자신이나 학교의 체면과 명예를 지키려고 학생들을 붙잡아 얽매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번 주에 개학해 그동안 유보됐던 ‘감옥살이’가 재개됐습니다. 활기 없고 무미건조한 학교생활을 보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ㆍ오늘을 잡아라)’을 외치며 학생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교사가 생각납니다. 키팅 역을 맡았던 로빈 윌리엄스가 9일 전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더 그럴 것입니다. 카르페 디엠은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위축되지 말고 청춘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재미없는 학교생활에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하고, 나아가 즐겁게 보내도록 해줄까를 궁리하는 학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난 7월 의정부고교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로 각종 분장을 하고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 게 전통입니다. 5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합니다. 지난해 2월 졸업식에서는 왕으로 분장한 학생회장이 단상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도 학생들은 마릴린 먼로, 핵이빨 수아레스, 박찬호, “미안하다~아!”고 외치는 고승덕 전 서울시 교육감 후보 등 다양하고 기발한 분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 3학년 교사들이 졸업앨범 문제를 논의한 끝에 학교 이미지상 좋지 않으며 동문과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친다는 이유를 들어 학생 복장으로 촬영을 하도록 종용하고 나섰습니다. 교감이 패러디 사진을 저지하자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나와 패러디 복장 시위를 했고, 독자적으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뿌렸습니다.  

이 문제는 널리 알려져 사회적 관심사가 됐습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한 학생은 “이렇게 찍는 게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걸 한다고 갑자기 공부를 손 놓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나 다른 분들께서도 ‘얘네는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 노네’라는 아주 좋은 말씀도 해 주시는데, 선생님들도 저희 되게 좋게 보고 계시는데 저희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학교 측은 분장 촬영을 용인했고, 학생회가 자체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노출이 지나치거나 표현 수위가 거친 사진을 걸러내고 앨범에 수록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앞으로는 졸업사진 촬영 이전에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사진 수위에 관한 규정을 정하면 학교 측이 이를 가정통신문으로 만들어 발송하기로 했습니다.

학교나 학생들을 위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원만한 합의를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갈등을 빚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교장이나 교감이라면 학생들을 뜯어말리려 하기보다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함께 또는 따로 재미있는 분장사진을 찍자고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신 나게 한데 어울려 놀자고 할 것 같은데.  

의정부고교가 졸업사진 문제로 시끄러울 때 서울의 한 구청장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뒤 경상도 첩첩산중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가 ‘색깔 있는 남자’가 된 것은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공식 행사에 매이고 의전에 갇히고 결재서류와 씨름하고 정치적 계산 속에 살아가는 구청장의 일상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고 싶은 작은 몸짓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그의 아내도 남편 따라 손톱 발톱을 물들였다고 합니다.

휴가가 끝난 뒤 그 구청장의 머리는 원래 색깔로 돌아갔습니다. 스스로 만드는 계획된 일탈이나 해방은 남과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 이롭게 작용합니다. 그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고 머리카락의 색깔을 바꾸면 머릿속 생각도 바뀌고 자유분방한 색깔이 자유분방한 생각을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엉뚱한 분장사진을 찍은 의정부고교 학생들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는 일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공부가 더 잘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감옥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곳이 될 수 있게 해 줄까, 함께 궁리하고 더불어 개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정말 가엾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시계꽃 (시계꽃과)

동녘 하늘이 희부옇게 밝아오는 여명의 해변! 발리 섬의 덴파사르 해변에서 만난 시계꽃입니다. 사철 뜨거운 태양의 나라, 파란 하늘과 야자수 곧게 뻗은 적도(赤道) 지역, 발리 섬 호텔 주변과 정원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열대식물들이 저마다 원색의 강렬한 빛깔과 고운 모습의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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