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과학자로- “직장맘 힘든 생활도 사랑으로 극복

 

 

이미영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 - 대전=신선미 기자 vamie@donga.com 

 

 

3년 공백 깨고 생화학자로 돌아온 ‘실험의 달인’

이미영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

 

 

 

※편집자 주

우수한 여성 인력이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직장을 떠나고 있다. 이런 여성 인력을 가리켜 ‘경력단절 여성’이라고 한다. 과학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원이라도 출산과 육아라는 현실에 직면하면 과학자의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런 경력단절 여성 연구원들을 ‘과학자’로 복귀시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오늘부터 3회에 걸쳐 ‘엄마’에서 ‘과학자’로 돌아온 알파우먼 3명을 소개한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는 여성 과학기술인이 다시 연구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2일 열리는 ‘여성과학기술인 구인-구직 만남의 날’에도 많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복귀를 도울 예정이다. WISET의 지원으로 과학자의 삶을 찾은 ‘슈퍼 우먼’은 올해만 43명에 이른다. WISET은 올해로 3년 째 여성 과학기술인의 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퇴근해서는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주세요.”

 

19일 오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만난 이미영 연구원은 자신만의 육아법을 소개했다. 근무하느라 낮에 아이에게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퇴근 뒤에 아이가 섭섭해 하지 않도록 충분히 전하라는 것이다. 이 육아법으로 기른 큰 아이는 벌써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직장맘으로 10년이 훌쩍 지난 셈이다.

 

이 연구원이 화학연에 처음 몸을 담은 건 2002년이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신약의 활성을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새로 합성한 화학물이 세포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세포 속 효소의 활성은 어떻게 바꾸는지를 따지는 일이다. 최근에는 신약 활성을 알아보는 방법에 관한 논문에 1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직장맘을 위한 최적의 장소, 대덕연구단지

이 연구원이 화학연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는 남편을 따라 대전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당시 남편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대전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었다. 대덕연구단지는 다른 곳과 비교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이 연구원은 “연구단지에 있는 어린이집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아이들을 맡아주고 여름방학도 1주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도 큰 아이가 28개월 때부터 연구단지에 있는 어린이집에 맡겼다. 연구실의 배려도 컸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을 고려해 퇴근시간을 정해주셨지요. 또 이 지역에는 연구원 생활에 맞게 저녁시간에만 아이를 맡아 주는 분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됐답니다.”

 

남편이 박사학위를 마치자 둘째가 생겼다. 하지만 둘째가 5살 쯤 되자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원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돌보지 않아서 그런가’하는 괜한 죄책감이 들어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마흔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두며 ‘이제 연구원 생활은 끝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WISET 통해 다시 연구소로

  “아이들 돌보고 간식도 챙겨주고 그렇게 지냈어요. 평범한 일상이지만, 저한테는 참 소중하더라고요. 그동안 못 했던 거라서 그런가 봐요.”

 

연구원을 나와 아이 곁에서 지낸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연구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 연구원이 근무했던 연구실의 연구 책임자인 이병호 책임연구원의 전화였다. 그는 전화로 WISET에 ‘R&D경력복귀지원사업’이라는 것이 있으니 지원해 보라고 추천했다.

 

마침 둘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시간이 생긴 터라 이 연구원은 흔쾌히 수락했고, 그 결과 연구원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연구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 책임연구원이 ‘은인’”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물론 10년 동안 함께 일하며  ‘실험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터.

 

하지만 직장맘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바쁜 엄마의 생활을 보고 자란 큰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이 ‘가정주부’라고 할 정도였다. 이 연구원은 “다시 돌아온 지금도 늘 직장과 가정생활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나 힘들 때 마다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연구원의 남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과 친구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이 연구원은 이 모든 일을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남편이 박사과정 학생일 때 이 연구원도 몹시 힘들었지만 “꿈을 향해 매진하는 남편을 보고 차마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연구원은 “지금 돌이켜 보면 힘들 때 남편과 집안일을 반씩 나누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며 “연구와 가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동아사이언스

대전=신선미 기자 vam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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