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미스터리] 사망원인 정말 알 수 없을까

 

 

 

동아일보DB 제공 

 

정황상 당뇨증세·저체온증 가능성 높아

과학적으론 아직 사망원인 단정하기 어려워

 

22일 오전 전남 순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구급차량에 실리고 있다. 시신은 이날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분소로 옮겨져 DNA 정밀 감식을 받았다. - 동아일보 DB 제공   “그는 살아 있을 것이다. 지금쯤 밀항선 타고 웃고 있는 것 아닐까?”

 

지난달 12일 숨진 채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사진이 SNS에 급속히 유포되면서 시신이 유씨가 맞는지 등의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5일 “유 씨 본인인 것은 100% 확신하지만 사망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발표하면서 의혹은 점점 커 지고 있는 분위기다. 과연 이 시신은 유 씨가 맞는 것일까. 유 씨가 맞다면 왜 부검을 포함한 과학적인 조사를 거쳤는데도 일체의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걸까.

 

“어떻게 사람이 4주 만에 백골로?”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는 시신이 단기간 내에 ‘백골’ 형태로 부패할 수 있는지 여부다. 사진에 있는 유씨 시신은 해골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있다. 경찰은 “유씨의 시신이 80% 백골화가 됐다”고 밝혀 의혹을 부추겼다.

 

이에 대해 국과수는 “일단 백골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시신의 얼굴 등이 훼손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근육이 남아 있어 백골화 됐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완전히 백골화가 됐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길 것은 아니다. 유 씨의 사망 시기는 5월  말 이후로 판단되는데, 비교적 온도와 습도가 높을 시기다. 만약 무덥고 습한 여름철, 온도와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시체는 2~4주 만에 완전히 뼈만 남는 경우도 많다. 물론 습하지 않고 양지 바른 곳이라면 1년까지도 시신이 유지되는 경우가 있지만 무조건 ‘4주에 백골이 드러난 것은 거짓말’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시신이 손상되는 이유는 세균에 의한 부패 보다는 포식자(들짐승이나 벌레) 등의 영향이 더 크다.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효소는 생명현상이 중단되면 오히려 세포의 분해를 돕기 때문이다. 이 때 완전히 썩어서 없어졌다기 보다 악취로 인해 벌레들이 달려들고, 거기에 알을 낳으며 구더기를 만들어 급속도로 증식해 전신을 파먹는다.

 

물론 효소의 작용이 둔해지고 냄새도 멀리 퍼지지 않는 겨울철에 사망한 시신은 그리 빨리 손상되지 않는다. 벌레 등의 접근이 차단된, 땅 속에 묻어둔 시신은 온전히 세균의 부패만을 기대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백골화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7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거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국과수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정말 유 씨의 것이 맞느냐’는 의혹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25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시신이 바꿔치기 됐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면사무소 업무일지와 112 신고기록에는 6월 12일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매실 밭 인근 주민 5명은 ‘그 이전부터 시신이 있었다’고 밝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 이유 때문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실종된 이복형제의 시신은 아니냐는 등의 각종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만을 보고 유씨 시신의 키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더 큰 것 같다고 지적하는 경우도 나왔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복형제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다른 어머니의 자식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부수적인 증거로 국과수는 정밀 기계로 측정한 결과 유씨 시신의 키는 159.3㎝ 가량으로, 경찰이 파악한 키와 거의 같으며, 치아의 형태나 치과기록 역시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시신의 발견상황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신이 유 씨 본인의 것은 맹백하다는 것이다.

 

화제가 된 치과기록에 대해 조민 더 시카고치과 원장은 “방송 등에 나온 영상을 기준으로 보면 금니로 때운 부분(골드크라운)은 어금니 두개를 묶어서 씌운 것으로 좀 과거의 방식이지만 꽤 오래전에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여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 “일단은 치과치료기록을 주치의가 미리 제공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기록과 비교해서 볼 경우 본인의 치과기록이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뇨합병증일까 저체온증일까

대중의 의혹이 끊이지 않는 건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감추고 있다”는 낭설도 이어지고 있다. 사망원인에 대해 독극물에 의한 피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사결과 유 씨의 시신에선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뼈가 부러지는 등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백승경 국과수 독성화학과장은 “간과 폐는 모두 음성 반응이 나타났다”며 “근육에서도 ‘케톤체(ketone body)’라는 성분에만 음성 반응을 보일 뿐 나머지에는 반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케톤체는 당뇨가 있는 사람이 포도당 대신 지방에서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생기는 물질이다. 이 때문에 유 씨의 사인이 당뇨로 인한 저혈당 발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설도 나온다. 다만 일반적인 당뇨 환자도 일부 발견된다는 점에서 꼭 이를 원인으로 주목하기도 어렵다.

 

길가에 쓰러져 있었던 만큼 유력한 추측으로 ‘저체온증 사망’ 설도 꼽힌다. 만취상태에서 길가에 쓰러졌다가 체온이 떨어져 죽었다는 것. 인근에서 술병이 발견됐다는 점 등이 이런 추측에 설득력을 주고 있다. 이를 놓고 대중에선 ‘저체온증으로 인해 객사한 시체라면 보통 반듯하지 않고 웅크린 형태가 흔하며, 5월 말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대학 법의학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법의학자 중 1/4은 방송을 탔을 만큼 국과수 검사 결과에 대해 시민들의 의구심이 큰 것 같다”며 “정황상 의문 가는 점이 많겠지만 과학적인 조사결과만큼은 신뢰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사본문]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4904

 
과학동아

전승민·이우상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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