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쉬~’ 하지 마세요

 

 

이태원 해밀튼 호텔 수영장, 중앙일보

 

 

질소계 소독부산물 만들어져

 

병만족’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오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2~3년 전 이벤트성으로 여성 연예인들이 오지 체험을 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여성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화장실이 큰 문제여서 한참 자리를 물색한 끝에 구석진 자리에 변소를 만드는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한 연예인은 ‘신호가 오면’ 개울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시원하게 방뇨했다며 태연스럽게 싱글벙글 웃고 나오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컨셉으로 연출한 것일 테지만.

 

사실 바다나 계곡에서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 소변이 급하다고 멀리 있는 화장실까지 갔다 온다는 건 꽤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바닷물(또는 강물)에 한 바가지도 안 되는 오줌을 더한다고 별 일 있겠나’라는 생각에 모르는 척 실례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수영장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는 모양이다. 바다나 계곡보다는 화장실이 가깝지만 그래도 번거롭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놀고 나서는 샤워를 하니 수영미숙으로 물만 마시지 않는다면 별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한 사람 당 땀 1리터, 오줌 0.1리터 남겨

 학술지 ‘환경과학과 환경기술’ 3월 18일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바다나 계곡에서는 몰라도 수영장, 특히 실내 수영장에서는 소변을 화장실에서 보는 ‘에티켓’을 꼭 지켜야겠다.

 

물이 흐르지 않아 오줌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문제이겠지만 오줌 속 성분이 소독약인 염소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해한 물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수영장뿐 아니라 상수도 정수에도 많이 쓰이는 염소는 강력한 산화제로 물속 미생물을 죽일 뿐 아니라 이상한 맛이나 냄새가 나는 화합물을 분해한다. 이렇게 소독을 한 물에는 잔여 염소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아침 일찍 실내수영장에 가본 사람은 특유의 염소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아있는 염소 역시 반응성이 크기 때문에 물속 분자와 만날 경우 화학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분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물질을 ‘소독부산물(disinfection byproducts)’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독부산물은 600여 가지가 넘는데, 이 가운데는 발암물질과 알레르기 유발물질도 포함돼 있다. 물론 대부분은 미량이기 때문에 심각한 경우는 드물지만, 수영선수처럼 실내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경우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소독부산물 가운데는 염소가 사람 몸에서 나온 물질과 반응해 만들어진 것도 있다. 주로 땀과 오줌에 들어있는 성분들이다.

 

논문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이 수영장에 한 번 다녀오면 땀 0.2~1.76리터, 오줌 25~117밀리리터를 수영장 물에 더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100명이 수영을 했다면 땀 100리터, 오줌 10리터 정도가 섞였다는 말이다. 한여름 수영장을 찾는 사람이 하루에 100명은 훌쩍 넘을 텐데, 이 사람들에서 나온 분비물을 계산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땀이 오줌에 비해 열 배 정도 더 많지만 실제 염소와 화학반응을 하는 물질의 농도는 대체로 오줌에 훨씬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실제로 심각한 건 오줌이다. 오줌에는 요소, 아미노산, 크레아티닌, 요산 같은 질소를 함유한 화합물이 들어있다.

 

이 화합물들이 소독약인 염소와 만나면 염화시안(CNCl), 삼염화아민(NCl3) 같은 휘발성 분자가 만들어지는데, 흡입할 경우 몸에 해롭다. 즉 염화시안은 폐와 심장, 중추신경계를 포함한 여러 장기에 손상을 입히고 삼염화아민도 급성폐질환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퍼듀대의 어니스트 블래츨리 교수팀은 2010년 오줌 속 요소가 염소와 반응해 주로 삼염화아민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블래츨리 교수는 이번에 중국농대 리 징 교수팀과 함께 오줌 속 요산이 염소와 반응할 때 주로 염화시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요산의 분자구조. 퓨린의 최종 대사산물인 요산은 오줌을 통해 배출되는데, 소독약인 염소와 만날 경우 질소계 소독부산물이 만들어지고 특히 몸에 해로운 염화시안이 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분자 가운데 파란색이 질소원자다(회색이 탄소, 빨간색이 산소, 흰색이 수소원자) - 위키미디어 제공   요산(uric acid)은 퓨린의 대사산물로 질소원자를 4개 포함하는 분자다. 퓨린은 DNA의 네 염기 가운데 아데닌과 구아닌이 속하는 분자구조다.

 

소변으로 요산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서 바늘처럼 뾰족한 결정이 만들어지는데, 그 결과 관절을 움직일 때마다 콕콕 찔러 무척 고통스럽다. 육식을 많이 하는 현대인들이 잘 걸리는 통풍(gout)이 바로 요산 결정으로 인한 질병이다.

 

아무튼 전형적인 오줌 속에는 요산이 4.54밀리몰농도(mM) 들어있어 불과 0.012mM인 땀보다 훨씬 고농도다. 따라서 수영장 물에 더하는 땀이 오줌보다 10배 더 많지만 요산을 놓고 봤을 때는 오줌이 93%를 차지한다고.

 

연구자들은 요산이 포함된 유사체액(body fluid analog)을 만든 뒤 염소 농도와 산성도, 온도 등을 달리한 여러 조건에서 요산과 염소 사이의 반응이 만들어내는 생성물의 종류와 농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요소와는 달리 삼염화아민보다 염화시안이 훨씬 더 많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체액 성분과 염소가 만나 만들어진 염화시안 가운데 24~68%가 요산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합물들은 휘발성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이 물 밖으로 빠져나오고 따라서 특히 실내수영장일 경우 흡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실내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수영선수들은 이렇게 흡입한 질소계 소독부산물 때문에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요산과 염소의 반응으로 주로 만들어지는 염화시안의 경우 염소의 농도가 더 높아지면 오히려 분해반응이 촉진돼 농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소독약을 더 쓰는 게 한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처럼 수영장에 적정 인원수를 훨씬 넘는 사람들이 찾는 시즌에는 이런 방법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이 조금 귀찮더라도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수영장에 들어온 요산은 대부분 ‘의도적 과정’인 방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수영장 공기와 수질을 개선할 여지가 많다”며 “사람들이 수영장 안에서 방뇨를 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수질관리나 환기 같은 별도의 조치가 없어도 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수중방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배우처럼 바다나 개울에서만 해야겠다.   

 

[기사본문]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4874/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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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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