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림바'를 연주하는 조금 특별한 연주자 - 시각장애 마림비스트 전경호 씨

 

[서울] “예전엔 100% 희망으로만 가득했다면 이젠 걱정도 많아졌어요. 하지만 자신감과 꿈을 향한 열망은 변함이 없죠.”

마림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악기이다. 나무로 된 건반들이 피아노 같은 방식으로 배열된 타악기인 마림바는 큰 실로폰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크기가 큰 탓에 좌우로 이동을 하면서 쳐야하는 역동적인 악기이기도 하다. 특별한 악기 마림바를 연주하는 조금 특별한 연주자가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타악을 전공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마림비스트 전경호(27세) 씨다.

필자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건 한국예술종합학교 타악 정기공연에서 그의 연주를 보고나서부터이다. 그가 울리는 청아한 마림바 소리는 사람의 마음까지 맑게 울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연주를 본 뒤 전 씨가 음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그리고 하필 타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졌다.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예술의전당 인근에서 만난 전경호 씨는 정겹게 웃으며 힘차게 인사를 건네는 해맑은 대학생이었다.

예술의전당 인근에서 만난 전경호씨
예술의전당 인근에서 만난 마림비스트 전경호 씨.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푸른 잔디와도 같은 해맑은 성격이었다.

 

붙임성 좋게 필자에게 여러 질문을 하던 그에게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었다. “어렸을 때에 즐길 수 있던 놀이문화가 많이 제한돼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지게 됐어요. 좋아하긴 했지만 클래식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음악을 전공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었지요.” 이랬던 그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중학교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학창시절 12년을 특수학교인 한빛맹학교에서 보낸 그는 밴드부에서 작은북을 연주하게 되면서 타악과 첫 인연을 맺었다. “선배의 권유로 작은북을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북을 치면서도 물론 흥미를 느꼈는데 음악시간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때 들리는 북 소리는 정말 환상적이었지요. 여러 악기와 어우러진 북 소리를 들으며 점차 북에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내가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이렇게 들리는구나!’ 연주를 들으면서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어요.”

그러나 그가 가려고 하는 길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음악을 하기로 결심한 그가 선생님께 진로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선생님은 세 가지 불가론을 말씀하셨다고 한다. “첫째 타악기는 오케스트라 악기인데 시각장애인인 그는 지휘자를 볼 수 없고, 둘째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는 1~2명이 돌아다니며 쳐야하는데 이동을 하면서 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입시를 보려면 마림바라는 악기를 쳐야 하는데 악기가 커서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처음엔 안 되는 일인 건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문적으로 조언을 해주고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음악 선생님도 부재했기에 가야할 길에 대한 갈피를 더더욱 잡지 못했다. 

 

 

마림바의 작은 부품 하나까지 느껴가며 악기와 완전히 일심동체가 돼 연주를 한다는 전경호 씨. 음악을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청아한 마림바 소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측이 전경호 씨뿐 아니라 음악에 관심있어 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해 2년제 대학을 설립했다. 그곳의 특수교육 교사 중 타악을 가르치는 이철수 교사가 그에겐 구세주였다. “이철수 선생님은 저에게 설리번 선생님과도 같은 존재예요. 저에게 도전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셨고 마림바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해주셨지요.”

그렇게 첫 발을 내디뎠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폭이 넓은 마림바를 연주할 때면 늘 긴장감이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타악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과 주위의 격려 덕분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특히 선생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악기의 각 부분을 만지면서 느끼도록 해주셨지요. 마림바와 일심동체가 될 수 있게끔 말이지요. 동작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설명해 주셨어요.” 어려움을 거치며 그의 꿈은 더욱 단단해졌고 마림바는 어느새 타악을 전공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목적이 됐다.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학교예술재단의 연주에서 협연을 하게 됐다. 그의 첫 번째 연주였고, 타악계에서도 처음으로 시도된 연주였다. 이 연주를 통해 그는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불가능함은 없다’는 신념으로 모두에게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1~2년간 외부에서 활동하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했다.

 

전경호씨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경호 씨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준 한국예술종합학교. 27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그는 이 학교 12학번 새내기로 입학했다. 

 

활발히 활동하던 그가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된 건 부족한 기초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다지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설리번 선생님 같던 이철희 선생님의 퇴임 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초중고 12년 동안 머물렀던 한빛맹학교를 떠나 그는 새로운 발판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27살의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12학번 새내기가 됐다.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온 그는 걱정이 늘어났다고 한다. “대학 입학 전의 저 같았으면 인터뷰를 하면서도 희망찬 얘기만 했을 거예요. ‘열심히 노력해서 다 극복해내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끝났을 테지만 이젠 조금 달라졌어요. 걱정이 늘었거든요. 음악계의 흐름을 읽기에 아직은 부족하고 가끔 벽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필자 역시 10여 년 넘게 예술을 전공해온 학생으로서 그가 마주했다는 벽에 공감이 갔다. 비단 예술계 내에서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마주하게 되는 고민일 것이다. 불도저 같고 오뚝이 같던 그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이고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20대였다.

지난 2013년 겨울

지난 2013년 겨울, 시각장애인 인식 개선 및 점자명함 활성화 캠페인에 참여한 모습. 전경호 씨는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싶다고 말한다.

 

같은 20대이자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는 “물론 걱정이 늘긴 했지만 자신감은 여전해요. 마림바를 사랑하고 있고 세계적인 마림비스트가 되고 싶어요. 타악 연주자가 되고싶다는 꿈 역시 놓지않고 있고요. 실력을 더 갈고 닦아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 후학 양성의 꿈도 이루고 싶어요.”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를 지었다.

후학 양성 역시 목표 중 하나라는 그는 우리나라 교육의 제도적 문제점도 지적했다. 견문을 넓히고 경험의 폭을 넓힐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기 위한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대학은 기초교육을 끝낸 학생들을 데리고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에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학에 오기 전 기초 경험을 충분히 쌓을 기회가 부족해요. 그렇다보니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 미처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해보고자 하고, 대학은 경험 있는 학생들을 원하니 서로의 요구가 맞지 않는 거죠. 핸디캡이 있는 사람도 대학에 오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토대가 제도적으로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서는 꿈꾸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행복하고, 여유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가 뿜어내는 긍정적인 기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꿈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정책기자 왕진아(대학생) hansol0629@naver.com

 

황기철 @con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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