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을 한다는데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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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을 한다는데

2014.07.03


제가 가는 미용실 주인의 이름은 ‘매화’입니다.

머리 할 순서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성은 생각 안 납니다. 서울 변두리, 가난한 동네 미용실의 미용사 '이름스럽다'고 지레짐작하기 전에 젊은 그네의 예쁘고 세련된 용모를 일단 먼저 봐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얼마나 예뻤으면 부모로부터 꽃 이름을 지어 받았을까만 '당최' 얼굴과 이름이 어울리질 않습니다.  

본인이야 ‘당근’ 자기 이름을 싫어하지요. 어쩌다 이름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그날은 그렇게 됐지만 여태껏 자기 이름을 당당히 밝힌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이런 사람 앞에서 제 이름을 말할 수야 물론 없지요. 제가 누군가요, 자타가 공인하는 이름의 ‘지존’ 아닙니까.^^

생긴 것도 중요하지만 이름도 얼굴만큼 중요하다는 걸 문득문득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정체성과 자존감 문제로 치자면 어쩌면 이름이 더 중요하다 싶은데, 잘생기고 못생긴 거야 부모도 어쩌지 못하지만 이름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의지와 결정의 산물이니까요.

아들도 아닌 딸, 그것도 위로 두 언니를 둔 존재감 없는 막내의 이름을, ‘가족이나 자식보다 국가와 민족을 더 사랑하는’ 중에 작명가를 찾아가 지어왔다는 것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보다 더 희미한 저에 대한 아버지의 유일한 사랑으로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임신중’, ‘주기자’ 같은 류의 ‘고전 버전’을 비롯해서 서양으로 이민 간 후 남편 성으로 바꿔 불리는 바람에 ‘양말년’이 되었다는 ‘황당 버전’ (이분의 원래 성은 ‘김’, 그래서 ‘김말년’ 이었다는데 이민 가기 전에 김밥 집을 했는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에 이르기까지 웃지 못할, 아니 웃을 수밖에 없는 이름들이 믿을 수 없이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모에 대한 원망을 품고 뒤늦은 한이라도 풀겠다며 나이 50이 넘어서 개명을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다 늙어서 하는 성형수술보다 더 허망한 몸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리지 않으면 이름이 아니거늘, 반 백 년을 사는 동안 이미 형성된 관계 속에서 새 이름을 불러줄 이, 그 몇이나 될까 말입니다.  

사람 이름은 그렇다 치고 일전에 부산 어느 해안가 마을에서 목격한 ‘푸짐한 대변’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은 그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변’이라는 지역 명을 딴, ‘대변’으로 시작하는 각종 간판과 상호 중에 ‘대변 식당’도 있었던 것 같고, 대변을 한곳에 모아두는 것으로도 모자라 옆으로 묻혀 옮겨 ‘모 은행 대변지점’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대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이 가도 냄새를 씻어내지 못할 것 같아 자못 걱정되었습니다 (향토성을 살리고 애향심으로 지은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대변에 대해서 " 멸치축제로 유명한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대변항은 ‘아름다운 어촌 100곳’(해양수산부 선정) 중 하나다. 대변(大邊)은 해변이 크다는 뜻이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大便을 연상한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편 요즘 버스 옆구리에는 병원 광고가 유독 많은데 한방 병원 중에 ‘모커리’ 라는 이름도 있더군요. ‘목허리’를 발음대로 썼는지, 아니면 영어명처럼 보이려고 그랬는지 여튼 좀 듣기에 ‘거시기’ 하고, ‘바노바기’ 나 ‘여노피’라는 병원명은 지금껏 뜻을 알 수 없어 궁금하면서도 약간 짜증이 납니다.  

왜냐하면 길거리 간판이나 상호를 읽으며 한창 글을 익힐 어린 자녀들이 한글을 비튼 조어나 황당한 축약어의 뜻을 물어올 땐 설명하기 곤혹스러운 젊은 부모들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병원 이름으로는 ‘자생한방병원’이 아주 멋있습니다. 병과 몸을 우주적 통합 원리로 이해하는 한의학의 치료 본질을 ‘자생(自生)’ 이라는 의미 안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이름이란 고상한 내면과 정신의 지향점을 담는 '무형의 그릇'이자 '의미의 틀'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생'은 잘 지은 이름입니다.

이름은 그저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워야 한다며 사람 이름을 그런 기준으로만 짓는다면 본인에겐 평생 걸림이나 상처가 될 수 있고, 제품명이나 상호, 간판일 경우엔  거북하거나 정도에 따라 공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름대로’ 사는 사람도 주변에서 자주 보질 않습니까.

고아라는 뜻으로,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태’로 지었다는 ‘김길태’. 후에 오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이자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하고 섬찟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자 자존감, 명예의 상징입니다. ‘이름값을 한다’는 말이 공연히 있겠습니까.

사회적으로 너무나 혼란스러운 요즘, 주위를 둘러보며 말도 안 되는 어지러운 이름들까지 한몫 보태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7월, 호주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으로 일하다 2013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자유기고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중앙일보, 여성중앙, 과학과 기술 등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KBS 라디오에 출연 중이다.    
낸 책으로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고, 2013년 봄에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출간했다.
블로그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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