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기술자들'의 기교 사법
李 후보 선거법 사건 2심 무죄
상식, 대법원 판례와 배치돼
판사가 '법 기술' 부린 것 아닌가
대법관들 판단은 어떨지 궁금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무죄판결문은 지금 다시 읽어도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증거와 논리를 꿰맞춘 ‘기교 사법’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소 내용 중 핵심인 ‘백현동’ 부분은 특히 더 그렇다.

백현동 의혹은 이 후보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이전 대상 공공기관인 식품연구원의 성남시 백현동 부지 용도를 한꺼번에 4단계나 상향 조정해 이 사업에 관여한 측근 인사에게 특혜를 줬다는 내용이다. 지난 대선 때 이 의혹이 불거지자 이 후보는 2021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해명했는데 그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다.
당시 발언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용도 변경은 “국토부 요청으로 한 일이고,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에 따라 (성남시가)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 방침은 (백현동 등 성남시의) 공공기관 이전 대상지 5곳에 대해 분양 사업을 할 수 있게 (용도 변경을) 해주자는 것이었는데 성남시는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국토부에서 만약 안 해주면 직무 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했는데 내가 조금만 반영해주겠다고 해서 도로공사 부지는 테크노밸리로, LH 부지는 의생명 단지로 개발됐다” “백현동 부지는 그냥 아파트 분양하겠다고 해서 저희가 해주지 말라고 버티다가 국토부의 법률에 의한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용도를 바꿔줬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발언이 전체적으로 “국토부 협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상향 조정했다”는 의미여서 허위라고 기소했다. 국토부와 성남시 전현직 공무원 20여 명도 법정에서 “협박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1심은 이를 근거로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이 발언을 다섯으로 쪼갠 뒤 ‘국토부 협박’ 발언은 위치상 “다른 공공기관 이전 부지의 용도 변경에 대한 것”이라며 백현동만 대상에서 빼버렸다. 그래 놓고 백현동 부지 용도를 “어쩔 수 없이” 바꿔줬다고 한 부분은 ‘의견 표명’이라 허위 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1심과는 의미를 완전히 달리 해석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발언 맥락과 상황을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당시 국감에서 질의한 민주당 의원은 ‘백현동 3대 특혜 의혹’이라고 적힌 패널을 들고 나와 “다 조작”이라고 하고는 “백현동 사업에 특혜를 줬느냐”고 물었다. 이 후보 발언은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백현동에 대해 묻고 백현동에 대해 답한 것이다. 국토부 협박으로 용도를 바꿔줬다는 부지에 백현동은 없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백현동만 없었다고 한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는 표현의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권자에게 주는 전체적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당시 이 후보 발언을 들은 사람 중에 국토부 협박에 따른 용도 변경 대상에 백현동은 없었다고 생각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2심 판단은 상식은 물론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작년 11월 이 후보의 위증 교사 사건 1심 재판부는 위증한 사람은 유죄로 인정하면서 이 후보에게는 “고의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위증한 사람은 있는데 시킨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법정에서 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판사들이 이 후보 앞에서 눈치 보며 ‘법 기술’을 부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법원은 지난주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전원 합의체에 회부하고 심리에 들어갔다. 얼마 전 마용주 대법관은 취임사에서 “법 해석과 적용은 상식에 맞아야 한다”고 했다. 대법관들 판단은 어떨지 궁금하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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