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붕괴] 헌재의 거듭되는 경솔하고 정파적인 행태: 조선일보
[사설]
헌법재판소가 3일로 예고했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건에 대한 위헌 여부 선고를 돌연 연기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숱한 정략적 탄핵소추는 제쳐두고 마 후보 문제를 먼저 결정한다고 서두르더니 선고를 불과 2시간 앞두고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일반 재판도 이런 경우는 드물다.
마 후보 관련 헌재 재판은 청구인 자격과 이례적 속도 등 ‘절차적 흠’ 논란이 작지 않다. “최 대행이 마 후보를 임명하지 않아 국회 선출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것은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그런데 권한쟁의 심판은 국가기관 간 분쟁이 전제인 만큼 청구인은 국회의장이 아닌 ‘국회’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마 후보 문제 관련 국회 의결은 없었다.
우 의장이 권한쟁의 청구를 한 것은 지난달 3일이다. 이에 앞서 헌재에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과 한 총리 탄핵 정족수에 관한 사건, 감사원장 탄핵안 등이 접수돼 있었다. 이 중 한덕수 전 대행 탄핵안과 정족수 문제는 국정 안정을 위해 가장 서둘러 결론 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한 전 대행의 정식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반면 마 후보 재판은 변론을 한 번만 하고 종결하려 했다. 최 대행 측의 변론 재개 신청을 3시간 만에 기각한 적도 있다. 왜 이 문제만 이렇게 서두르는가.
헌법 재판은 하나하나가 국가 중대사다.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헌재는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마 후보 문제에 대한 헌재의 행태는 공정, 신뢰, 신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들이 노골적인 정파성을 드러내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는 너무나 명백한 민주당의 정략이었다. 그런데도 헌재 재판관 4명이 이 위원장 탄핵에 손을 들었다. 모두 민주당 측이 추천한 사람이었다. 4명 중 3명이 우리법연구회나 그 후신인 특정 판사 그룹 출신이다. 이들의 행태는 헌법 재판관이 아니라 민주당이 파견한 정당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마 후보를 임명해야 한다는 권한쟁의 결정을 하려면 헌재 재판관 8명 중 5명, 보류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하려면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추천 헌법 재판관들이 마 후보 임명을 밀어붙였으나 이 숫자를 얻지 못하자 ‘일단 후퇴’했을 가능성이 있다. 헌재가 청구인 자격 문제 논란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경솔하고 위험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강신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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