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질하는 한국인, 우리 모두 오래 산다! [정숭호]


욕질하는 한국인, 우리 모두 오래 산다!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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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질하는 한국인, 우리 모두 오래 산다!

2018.11.30

우리는 오래 살게 돼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요. 예전보다 잘 먹게 된 게 첫째 이유일 겁니다. 음식이 넘쳐나잖아요. 매년 12조 원어치의 음식물이 쓰레기가 되는 게 그 증거입니다. 먹는 것을 부추기는 먹방, 쿡방 또한 넘쳐납니다. 먹방이 많은 것 같아 어느 휴일 아침, 도대체 몇 군데서 이런 걸 틀어주고 있나 세어보다가 관뒀습니다. 정말 너무 많았어요. 똑같은 얼굴이 같은 시간대에 이 채널에서는 고기를 굽고, 저 채널에서는 국수를 ‘흡입’하고, 또 다른 채널에서는 이름 외우기도 힘든 요리를 펼쳐놓고 ‘맛있다, 맛있어’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습니다. 산 채로 조리하면 더 맛있다며 펄펄 끓는 해물 남비에 살아 있는 문어를 집어넣는 것도 봤습니다. 외국을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먹방에 나왔던 그 얼굴들이 외국에서도 여기서 하던 것처럼 먹방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것 안 보여줘도 잘 먹고 있는데 더 잘 먹으라고 거의 24시간 내내 부추기고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 영양 상태는 '상지상(上之上)', '최고 중의 최고(Best of best)', '이 이상은 없다(Non plus ultra)!', '최우수 등급(Suma cum laude)'이 분명할 겁니다.

잘 먹는 세상이 된 데다 건강에 대한 관심까지 높아졌습니다. 먹방과 쿡방 사이에 의사들은 물론 자칭 타칭 건강 전문가들이 이렇게 하면 지방이 빨리 타네, 저렇게 하면 관절이 튼튼해지네 하면서 건강 유지법을 강의합니다. 요가, 체조, 스트레칭이 아침나절 TV의 기본 프로그램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아프면? ‘세계 최고의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해줍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1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을 앞두고 미국의 인터넷 매체 ‘복스(VOX)’가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복스는 “앞으로 한국인이 미국 사람들보다 오래 살 것이며 그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인데, 그 이유는 한국의 의료서비스가 미국 것보다 더 공평하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복스가 말한 ‘공평한 의료서비스’는 결국 좋은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좋은 의료서비스가 아니겠어요? 세계 최강의 나라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를 더 좋다고 했으니 ‘세계 최고’라고 해서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오래 살게 될 이유에 한 가지 더 붙일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욕질하는 오늘날의 세태 또한-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옛말이 맞는다면-우리 한국인들의 수명을 늘려줄 겁니다. 정파와 이념에 따라, 진영과 편 가르기에 따라, 누가 양지에 있고 누가 음지에 있느냐에 따라, 갑을관계에 따라 서로 저주하고 혐오합니다. 덜떨어진 남자들이 모여 성깔 사나운 여자들을 욕하고, 성깔 사나운 여자들도 이젠 안 참는다며 전에는 입에 담지 않던 남자들의 욕으로 맞받아칩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서 배울 게 없다고 욕하고 어른은 아이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욕합니다. 이 신문 저 신문이 세상 여기저기서 퍼 담아 아침마다 툭툭 옮겨주는 증오와 저주 역시 욕의 변형입니다. 쌍시옷이 들어가는 육두문자만 없을 뿐.  

욕질로 오래 사는 건 장기적 장수법이고, 단기적 장수법도 아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정부가 자기 말을 지키는가를 지켜보는 겁니다. 최저임금제, 52시간 근로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등 문제를 풀려고 한 정책들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 때마다 정부는 ‘가을이면 좋아질 거다’, ‘아니, 좀 미루자. 연말이면 좋아질 거다’ 하더니 얼마 전에는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곧 성과가 나올 거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약속, 이 전망이 실천되는지를 지켜보다 보면 우리의 수명은 미국 복스가 예상한 것보다 더 늘어날 겁니다.

물론 수명을 단축시킬 요소도 있습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세요. 꼴 보기 싫어 이민을 가면 좋으련만 그럴 능력이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한둘은 있을 겁니다.

초미세먼지를 WHO(세계보건기구) 기준치 이하로 줄이면 우리나라 사람 수명이 1년은 늘어난다는 연구가 있었지요. 미국 시카고대 에너지 정책연구소가 얼마 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화석연료를 더 쓰게 된다니 미세먼지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많아지겠어요. 미세먼지와 수명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기다릴 사람도 있을 것 같군요.

그래도 나는 우리가 더 오래 살 거라는 데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욕설의 힘이 그렇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에도 귀가 계속 간지럽습니다. 나도 오래 살 것입니다. 하하하하!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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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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