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변해가는 사회] 채선당·240번 버스·이수역 사건… '인터넷 마녀사냥' 왜 반복되나


[이상하게 변해가는 사회] 

채선당·240번 버스·이수역 사건… '인터넷 마녀사냥' 왜 반복되나


#1. 33년 동안 버스 운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승객에게 욕을 한 적이 없다"는 버스 기사 A(61)씨는 지난해 '48시간의 지옥'을 경험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 240번 버스의 운전기사가 어린아이 혼자만 먼저 내린 것을 확인하고도 뒷문을 열어 달라는 엄마의 요구를 무시했다"는 글이 올라온 뒤부터였다. '파렴치한 버스 기사'로 낙인이 찍히면서 서울시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는 하루 2000여 건의 항의성 민원이 폭주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 버스 기사의 유기 방조 혐의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여론은 이틀 만에 잠잠해졌지만 당사자와 가족이 경험한 충격과 공포는 아직 남아 있다. A씨는 사건 발생 반년이 흐른 뒤에도 "아직도 남아 있는 악플 때문에 고통스러워 자택(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2. 전국에 270개 가맹점을 보유한 유명 샤부샤부 전문점 '채선당'이 휘청거린 건 인터넷에 미확인 정보가 퍼지면서부터였다. 2012년 2월 회원 수가 170만 명에 육박하는 한 임신·육아 카페에 "종업원에게 배를 발로 차이는 등 폭행을 당했다"는 임신부의 글이 올라왔다. 전국적인 불매 운동의 시발점이 됐고, 사건 발생지로 지목된 충남 천안의 해당 지점에는 "5초마다 욕설 전화가 왔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종업원의 폭행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때는 늦었다. 숱한 욕설에 시달린 가맹점주는 시골로 농사를 지으러 내려갔다. 급하게 가게를 정리하느라 2억8000만원에 인수한 가게를 1억1000만원에 넘겼다.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이 암 투병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궈놓은 가게였다"고 했다.


#3. 열흘 전인 지난 13일 새벽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성인 남성 3명과 여성 2명이 시비가 붙었다. 다음 날인 14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엔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두개골이 찢어질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여론은 이 사건을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범죄'로 규정했고, 바로 그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엔 만 하루 만에 3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하지만 들끓던 여론은 다시 뒤집혔다. 15일 유튜브엔 피해자라 주장한 여성들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폭언을 한 정황을 보여주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가게 내부 화면을 확인한 결과, 신체 접촉은 여성들이 먼저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흉내를 낸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하라"는 역(逆)청원 글이 올라왔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라 명명된 이번 사건의 진상(眞相)은 아직 불투명하다. 경찰은 양측을 쌍방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인터넷 마녀사냥의 광풍

인터넷발(發) '마녀사냥'은 거의 매년 반복된다. 어느 사안이 온라인을 타고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은 이렇다. 하루 접속자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 시작점. 여기 올라오는 글의 공통점은 자극적이면서도 간단명료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대개 "부당한 일을 당했다"며 특정인이나 업체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식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은 생략된 채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수천 건씩 공유되어 무서운 속도로 퍼진다. '남성 대 여성' '부자 대 빈자' 같은 프레임이 씌워지면 논란의 크기는 배가 된다. 최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라는 '전가의 보도'도 등장했다. 하루 평균 700여 건의 청원이 올라오는 이곳에 글을 올리면 공론화까지 일사천리다. 서명자가 급증하면 부담을 느낀 경찰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나선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수역 폭행사건은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되풀이됐던 논란 확산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한쪽 의견만 듣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학습효과'는 없다. 검증되지 않은 미확인 정보와 일방적 주장이 '팩트'로 둔갑해 퍼져 나갔고,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여론은 반전을 거듭하며 널뛰기를 한다. 지금 인터넷에선 '이수역 폭행사건'을 두고 2주 가까이 공방(攻防)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저녁 폭행사건이 있었던 이수역 근처 해당 술집을 찾았다. 평일 저녁이면 맥주잔을 기울이는 손님들이 붐비던 곳이지만, 이날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계단을 따라 지하 1층 매장으로 내려가니 40여 개 좌석에 들어선 손님은 두 테이블(5명) 정도에 불과했다. 일부 네티즌은 "가게 사장이 피해자가 큰 상해를 당할 때까지 경찰을 부르지 않고 사건을 방관했다"며 트위터에 매장 전화번호와 대표 메일 주소 등을 공개해 항의를 유도했고, "본사가 이수점 사장을 해고하고 자필 사과문을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블로그 리뷰나 맛집 정보 사이트는 음식이나 서비스가 아닌 폭행사건 관련 내용으로 도배됐다. 가게 사장은 며칠째 두문불출이고, 알바생은 "쏟아지는 항의 전화에 하루 종일 전화선을 뽑아놓는다"고 했다.




인터넷 여론몰이, 이대로 괜찮나

전문가들은 시류에 쉽게 휩쓸리고, 매번 '아니면 말고' 식인 인터넷 여론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병리(病理) 현상으로 꼽는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 때문에 책임이 전제되지 않은 의견이 마구 쏟아지는 환경이 조성됐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슈가 생기면 어김없이 온라인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순간적으로 내뱉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이성적 논의보다는 감성적 성토가 주를 이루고,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인터넷 마녀사냥 피해자는 "상황이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특정인에게 무분별하게 손가락질을 했던 사람들은 사과나 정정의 글 한마디조차 없이 다시 일상 속으로 유유히 되돌아간다"고 비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사건은 1만3348건에 달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인터넷 등 정보 매체를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죄(重罪)에 처해진다. 하지만 지난해 검찰이 처리한 명예훼손 사건 중 62%는 불기소 처리됐다. 기소돼도 초범은 벌금이 100만원 남짓이고, 민사소송 위자료도 3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소문이 한번 퍼지면 되돌리기엔 너무 늦다. 지난해 미국언론협회(API) 조사 결과, 가짜 뉴스의 확산 속도는 이를 바로잡는 뉴스에 비해 9배 정도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순채 중랑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공학박사)은 "피해자를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은 소셜미디어, 개인 방송 활성화로 증가 추세에 있다"며 "가해자의 악의적인 위법 행위에 대해 실손해보다 훨씬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사용자 개인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나은영 서강대 교수는 "사용자는 미디어를 균형적으로 이용하고, 정돈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정보를 여과·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해독 능력)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교육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은중 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3/2018112301803.html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