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의 희망 [안진의]


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의 희망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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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의 희망

2018.11.23

화가란 어떤 직업일까요. 그 일생을 들여다보면 대개 어린 시절 아주 서툴게 붓을 잡고 그리기 시작해서, 나이 들어 붓 들 힘이 없어질 때 까지 그림을 그리는 삶입니다. 화가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직업인 셈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화가가 그리는 그림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이 없는 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고독과의 싸움입니다. 남과 달라야 하고 어제보다 나아야 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존재감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치열하게 그리며 고독 속에 놓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고독 속에 창조의 원천이 있지만, 평생에 걸치는 긴 시간 동안 고독과 대면하는 일은 고통입니다.

그런데 평생에 걸친, 정답이 없는, 고독과 다투는 이 일에 가난까지 겹친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게 37년 동안 고독 속에 산 인물입니다. 그에게 좋은 날이란 어떤 날이었을까요. 그는 유명해지거나 영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표로 한 것을 그릴 수 있는 날, 그것이 좋은 날이라고 고백합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의 화가들도 여전히 결코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좋은 날을 꿈꿉니다. 그 일을 하는 데 경제적 이유가 걸림돌이 되진 않았음 하는 바람을 갖고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합니다. 우리 주변엔 꿈을 접거나,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유능한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예술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며,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우리는 예술가의 삶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요. 예술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기여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육안은 예술작품의 표면만을 매만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심안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요.

얼마 전 <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이 예술가들을 돕고자 세워졌습니다.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란 하나님이 인간인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한다는 의미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을 설립한 사람은 대기업도 대단한 부호도 아닌 그냥 화가입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선배 교수이며 뛰어난 작품성과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화단의 중견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분입니다.

그는 평소 자신의 그림이 생명을 살리는 데에 사용되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가난을 겪어 본 화가는 예술가의 척박한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오랫동안 작품 판매 수익을 후배, 동료, 이웃에게 나누기도 하고, 소아암과 같은 환자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장애 어린이들의 그림을 지도하는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제한된 물질 안에서 진행하다 보면, 때론 누군 돕고 누군 돕지 않는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에, 또한 정말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심 없이 재단에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지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더 뜻깊은 일이 될 것이며, 선의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키우는, 소중한 경험의 확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얼마 전 인카네이션 문화예술재단은 경제적 이유로 창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을 위해 예술상 공모를 했습니다. 작품 매입이나 전시 의무 등의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상금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학비 마련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위해 예술장학금도 수여하고, 나아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의료비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예술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일까요? 예술이 어렵고 힘든 현실에 한 줄기 빛이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이번 예술상 공모를 통해서는 5명의 작가들이 선정되었고 이들에게는 각 천만 원씩의 상금이 수여됩니다. 삶이 정말 힘들고 괴로움의 연속이지만, 그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자체에서 생명을 느끼고 공감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삶의 의미가 있다는 청년작가에게 희망을 겁니다.

녹록지 않은 삶, 용기와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는 작가들에게 이상하리만치 예술은 유일한 빛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을 응원하는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함성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도 차가운 현실에 서러운 눈물을 참고 캔버스를 마주하는 고독한 작가들을 떠올려봅니다. 비단 예술뿐만이 아니겠지요. 공감과 나눔이 필요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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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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