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도 모자라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가


무능도 모자라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가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가짜 뉴스' 공격과 공무원 휴대전화 압수는 反민주적 권위주의 모습

정치인의 신념이 과하면 善意가 惡을 낳고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려


   1970~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며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외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1987년의 정치 변혁을 경험했던 필자 또래의 장년층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떨리는 가슴으로 기억한다. 권위주의가 얼마나 참담하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문재인 정부가 국가 안보 태세의 약화 및 미국과의 마찰을 불사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매달릴 때, 악화일로의 성장·고용 성과에 눈감고 소득 주도·공정 경제 같은 반(反)시장적 경제정책을 고수할 때, 폭포수처럼 쏟아진 반대를 무릅쓰고 탈(脫)원전 정책에 집착할 때, 그래도 "설마" 하며 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민주 정부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타계한 정책학자 린드블롬(C. Lindblom)에 따르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은 정책 능력(intelligence)과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작품이다. 이 두 축의 하나인 정책 능력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새삼스러울 바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정책 능력에 앞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인간적 호감에 이끌렸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서 소탈하며 민주적 가치에 충실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정부가 새만금 간척지를 태양광 패널로 덮는 계획을 불쑥 발표하고, 예산 정국에 경제 수장들을 전격 교체하고 그 자리에 여권조차 우려하는 소득 주도·탈원전·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자를 영전 발탁하며, 심지어 이런 위태로운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가짜뉴스(fake news)로 규정해 누르려는 시도를 지켜보면서 호감은 싸늘한 탄식으로 바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무능도 모자라 국민이 자신을 지지했던 결정적 덕목인 민주주의마저 저버리는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떤 정부도 정책 능력이 완전할 수 없다.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도 크고 작은 정책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정책 실패가 예사인 무능(無能)한 정부라 해도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라는 심정으로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무능을 넘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권위주의로 나아갈 때, 이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 독선(獨善)으로 변질된 신념이 존재한다. 정치인에게 있어 신념은 미덕이다. 하지만 지나친 정치적 신념 또는 도덕적 확신 속에는 국가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함정이 도사린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고전이 된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그 위험을 이렇게 지적했다. "신념을 중시하는 정치인은 결과들은 도외시한 채 신념의 실현 그 자체에 집착한다. (중략) 자신이 지향하는 선(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심스럽거나 위태로운 수단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멀리 찾을 것 없이 10여년 전 노무현 정부가 그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사수(師授)이자 동지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현실의 시장(市場)을 정의와 이성, 도덕이 구현되는 세계로 가정하고 성매매, 사교육, 강남 집값 등에 대해 설익은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의 한 축에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노동법 개정 등을 이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인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그들 및 순응적인 코드 인사들만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를 능가하는 '신념 통치'로 질주하고 있다.


기자실 폐쇄는 노무현 정부가 권위주의로 돌아서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최근 '가짜 뉴스' 공격은 이를 그대로 재연(再演)한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청와대 비서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장관들을 대동해 비무장지대를 시찰한 그 비서실장, 국민연금 개혁안 언론 유출자를 색출한다고 담당 공무원들의 휴대전화까지 압수한 민정수석실의 행태는 어떠한가?




다시 막스 베버는 말한다. "정의로운 행동과 책임 있는 행동 간에는 심연(深淵) 같은 차이가 있다. (중략) 신념에 집착하는 정치인은 선(善)이 악(惡)을 낳을 수 있음을 인식 못 하는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


마치 신념의 맹목(盲目) 상태에서 무능을 넘어 민주적 기본 가치마저 부정하는 현 정부를 내다본 대목인 듯싶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반민주적 권위주의로 내달리는 문재인 정부에 이 오랜 교훈을 전한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2/20181112046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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