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불경기에 화물차주·캐피털 업계도 ‘죽을 맛


설 불경기에 화물차주·캐피털 업계도 ‘죽을 맛


‘한탕 2만5000원, 당신은 이 돈으로 살 수 있나’

톤 구분 없이 ‘1회전’ 운임 책정

무리하는 화물차주들


  28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사무국에선 인천지부에 보낼 팸플릿 도안을 확정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천공항을 드나드는 화물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팸플릿에는 ‘한탕 2만5000원, 당신은 이 돈으로 살 수 있나’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화물차주들은 1t, 5t 구별도 없이 4∼5곳에서 하차를 하는 ‘1회전’의 운임이 2만5000원으로 박하게 책정된 현실에 “차가 물로 달리는 줄 안다”고 혀를 차고 있다. 화물연대는 “화주 입장에서는 차를 골라 쓸 수 있어 최저 수준의 운임만 주어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물동량은 그대로인데 화물차가 꾸준히 늘면서 수급이 맞지 않게 됐다. 정부가 화물차 총량을 규제한다고 했지만 갈 곳 없는 퇴직자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같은 번호판을 달고 차량 몇 대가 운행하는 ‘쌍둥이 번호판’ 사례도 있다. 건설경기에 자신의 미래를 건 결정들이었지만,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투자는 오히려 줄었다. 국제유가는 올랐다.


운전석에서 맞은 한파는 금융권의 책상 위로도 올라왔다. 덤프트럭과 트레일러 등 ‘상용차’를 장만한 이들은 금융권에 할부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상용차를 취급하는 캐피털 업계는 연체율이 지난해 말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중고차 할부의 경우 최근 연체율이 두 자릿수가 된 캐피털사도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승용차와 달리 상용차 차주들은 기본적으로 금융권의 ‘서브프라임 고객’(비우량 고객)이다. 대출을 끼지 않고 상용차를 사는 이들은 없다. 대형 덤프트럭의 경우 신차 가격이 2억원가량이다. 차주들은 매월 200만∼300만원의 대출 원리금을 6∼7년간 내야 한다.




화물차주들에게서 위험 신호가 감지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부산과 영남지역의 SOC 투자 예산이 삭감되자 해당 건설 현장에 투입될 덤프트럭들이 할부금을 내지 못하기 시작했다.


상용차 할부금융을 취급하는 금융권에선 대손비용이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업계 1위 현대커머셜의 경우 최근 1년 새 연체율이 0.28% 포인트 상승했다. 금융회사는 돈을 못 갚는 화물차주에 대해 근저당을 설정해 차량을 회수한다.


하지만 경기 흐름이 반영되면서 중고 트럭과 컨테이너 차량은 헐값이 됐다. 2억원짜리 덤프트럭이 1년 달린 뒤 경매에 나오면 8000만원 수준이다. 차액은 그대로 금융회사의 손실이 된다.


누구도 해법을 모른다. 김성수 화물연대 부본부장은 “광주광역시에서 대형 컨테이너를 채워 전남 광양까지 달려 하차한 뒤 ‘깡통’으로 돌아오는 왕복 240㎞에 운임 24만원이 쥐어지는데, 기름값만 10만원”이라고 했다. 일용직 잡역부보다 많이 벌겠다고 무리하는 화물차주들은 졸음운전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퇴직한 뒤 뛰어든 초보자들이 사고를 자주 일으킨다. 김 부본부장은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한 트럭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동료도 있었다”고 했다.




산업자재와 폐기물을 활발히 날라야 할 고객들의 고전은 금융권을 점점 보수적으로 만든다.


상용차 할부금융을 취급하는 금융권 관계자는 “생계형 차주들은 운송 수익으로 할부금, 지입료, 연료비에 생활비까지 충당한다”며 “중고차 가격마저 하락하니 신규 취급을 늘리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럭 등 건설장비 판매량이 전년 대비 급감했다”며 “실적이 나빠진 금융회사들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25237&code=11151400&sid1=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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