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東江) 가에서 피카소와 아프리카를 만나다 [정달호]


동강(東江) 가에서 피카소와 아프리카를 만나다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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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東江) 가에서 피카소와 아프리카를 만나다

2018.10.29

동강은 정선과 영월 일대에서 산맥과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흐르다가 서강을 만나 남한강으로 들어갑니다. 동강이라면 보통 래프팅을 떠올릴 터인데 웬 피카소인가, 하고 뜨악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그의 작품이나 그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미술가가 바로 피카소이니 동강 가에서도 피카소를 만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피카소가 20대에 아프리카 조각상에서 크게 영감을 받아서 그만의 스타일을 이루어 나갔다는 것은 미술 분야의 상식인데 이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영월의 아프리카미술박물관입니다.

미술작품 보기를 좋아하는 편인 저도 해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을 둘러보았지만 피카소의 작품 하나라도 소장하지 않은 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짐작을 넘어서는 대단한 다작 예술가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어느 미술관에서도 피카소의 회화나 조각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는 여태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회화나 조각은 아니라도 장흥에 있는 가나아트파크 내 '피카소 어린이미술관'에 가면 피카소의 드로잉과 판화와 도자기 들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역시 피카소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카소와 아프리카 미술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많은 아프리카 조상(彫像)들과 공예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에 살면서도 그 멀리 영월까지 가서 두 번이나 그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거길 찾았간 것은 매번 거의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작년에 며칠 서울에 머무는 동안 마침 이 박물관의 어떤 초청 행사에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상경길에 모처럼 날짜가 맞아떨어져서 메일로 미리 신청을 한 것이니 순전히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기가 맞았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하나의 우연이자 작은 행운이었습니다. 마음이 있다고 해서 제주에서 영월까지 단숨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만 지내는 것이 단조로워서 오랜만에 영월도 보고 아프리카 행사에도 가게 되니 흥이 돋아 멋모르고 참여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교부 선배인 이 박물관의 관장님이 저를 포함한 자유칼럼 애독자이기도 해서 특별히 초청 명단에 올렸다고 합니다. 저는 십수 년 만에 만난 선배님이 이런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은 바로 한 주일 전 자유칼럼 필진의 가을소풍에 참여한 덕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인 이 소풍에는 그간 날짜가 맞지 않아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다가 올해 마침 서울에 좀 오래 머무는 통에 막바지에 와서 문득 소풍 계획이 떠올라 부랴부랴 주최측에 알려 가까스로 일행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덜렁 버스에 올라타서 여정을 살펴보니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 들어 있었습니다. 중등 시절 수학여행으로 가본 이래 근 오십 년 만에 영월엘 또 가게 되었고 간 김에 단풍도 보고 박물관도 다시 찾아볼 수 있었던 것 역시 행운이었습니다.

작년 ‘르완다(Rwanda) 문화의 날’에는 아프리카의 볼거리와 먹거리 등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특별 초청된 아프리카 지역 대사들과도 만나고 서울에서 온 지인들과 담소도 하며 보내는 바람에 정작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서는 오래전 주 나이지리아 대사를 지낸 조명행 관장으로부터 직접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일행이 많아 동행한 부인들은 따로 부관장인 조 전 대사 부인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하였습니다. 모두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관람하였기에 아프리카 미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명행 관장은 오래전에 은퇴하신 분으로서 제가 보기에는 은퇴라기보다는 새로운 외교를 시작하기 위해 현직을 떠났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매년 아프리카 한 나라를 선정하여 그 나라 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행사를 벌여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간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세네갈을 초청하여 문화행사를 치렀다고 하는데 전직 대사로서 이 이상 우리 외교에 기여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보다 전에 건립된 훨씬 규모가 큰 고양시의 중남미문화원(박물관, 미술관, 회의실 등 보유)도 유사한 경우로서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한국과 중남미의 관계를 한층 깊게 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외교 선배들의 현역 못지않은 외교활동을 보면서 이들에 대한 존경은 물론 ‘나는 그간 뭘 했나?’ 하는 일말의 자책감도 들었습니다. 이 박물관들로 인해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이 늘고 있다 하니 이분들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크든 작든 하나의 박물관을 만든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전시 공간인 건축물을 확보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전시할 품목들을 마련한다는 것이 국가나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보통의 각오와 노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하나씩 모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조 관장님은 대사에 이르기까지 두어 차례 아프리카 근무를 하는 동안 많은 작품들을 수집하였는데 이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수집 과정에서 부인의 반대에 부딪힘으로써 겪을 수밖에 없는 가정적 애로도 컸다고 합니다. 지금은 부관장인 김읍자 여사도 남편 못지않은 아프리카 문화 전도사가 돼 있다고 합니다. 수집에 관련된 한 일화를 들으면서 고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지방에서 ‘아프리카 여인상’이라는 매우 아름다운 등신(等身) 조각을 구입하여 수도로 가져오는데 작품을 직접 들고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작품의 가치가 웬만큼 알려져 있는 만큼 지방의 관계 당국은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으려면 일등석을 타야 한다고 해서 큰돈을 내고 억지춘향격으로 항공기 일등석 티켓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 관장님의 아프리카 미술사랑은 남달랐다고 하겠습니다. 전시실을 돌면서 대부분 기형적으로(deformation) 빚어진 전신 조각들, 여러 모양과 색채의 마스크들, 현란한 장신구들과 생활도구 등 다양한 작품들에 그의 애정이 깃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아프리카 미술을 이해시키고자 열성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인들을 안내한 김 여사님도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9년에 오래전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두 분의 아프리카 사랑과 열정이 아니었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 관장님은 아프리카인들이 예술로서 작품들을 만들었다기보다 필요에 따라 만들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품으로 남게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인들의 삶이 바로 예술이 된 것이며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아프리카의 생명력이라고 열을 올려 설명합니다. 아프리카 조각에 나타난 생명력과 추상성이 피카소에게 영감을 주고, 나아가 서양 미술이 입체파나 초현실주의로 나가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진기한 아프리카 마스크들을 소개하면서는 같은 벽면에 걸린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 복사판과 한 부분 한 부분 비교하면서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원작(뉴욕현대미술관 소장)을 비롯하여 복사판을 수없이 봐 왔지만 이날의 감상(鑑賞)은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아프리카 마스크는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물건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스크의 스타일과 모양이나 색채 등이 다 다른 것은 부족들의 종교적 믿음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프리카 예술품들을 보면서 삶과 예술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을 달리 어디에서 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아프리카 공예품이 몇 개 있긴 합니다. 두 차례 여행을 통해 나이로비에서 구입한 상아 조각(박물관 조각과 유사한 스타일로 새겨진 여인상), 꽤 무거운 나무로 만든 코뿔소와 물소 조각(흑단인지는 확실치 않음), 섬세하게 조각된 묵직한 마사이 지팡이 등입니다. 다 기념품 수준이지만 야생동물의 조각은 참으로 정교해서 높은 데에 둘을 마주보도록 올려놓고 우리 집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에도 큰 규모의 아프리카박물관이 있어 저에게는 아프리카 문화예술이 비교적 익숙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품게 됩니다. 머나먼 옛날 호모 사피엔스가 오랜 진화를 겪으면서 지구적, 인류적 대장정을 시작한 곳이니 아프리카인들을 우리와 다른 인종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인류는 종족과 인종이 무한히 뒤섞이고 있습니다. DNA 연구에 따르면 수만 년 동안 뒤섞임으로 인해 종족이니 인종이니 하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어쨌든 유라시아나 북아메리카에 비해 젊은 노동력이 풍부한 아프리카는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세계무대에서도 만만치 않은 목소리를 내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프리카를 존중할 뿐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손잡고 함께 나가야 할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영월의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 갖는 의미는 크고 중요합니다. 시간이 나시면 오가는 길에 영월에 들러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을 꼭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동강은 평창의 오대산(五臺山:1,563m)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朝陽江)이 합류한 강으로 완택산(完澤山:916m)과 곰봉(1,015m) 사이의 산간지대를 감입곡류(嵌入曲流)하며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월읍 하송리(下松里)에서 서강(西江)과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동강의 길이는 약 65킬로미터이다. (두산백과)

* 아프리카 대륙은 지구 전체 땅 면적의 22%를 차지하여 크기가 아시아 대륙 다음이며 면적은 한반도의 125배에 달한다. 9억이 넘는 인구와 54개국의 유엔회원국이 있으며 3천여 부족이 1천여 종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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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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