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杭州)-대운하 종점의 감회 [김수종]


항저우(杭州)-대운하 종점의 감회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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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杭州)-대운하 종점의 감회

2018.10.16

1,400년 전 수양제(隋煬帝)가 만들었다는 대운하는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카페 창밖은 부슬부슬 이슬비가 오는데, 폭이 300m 이상 됨직한 운하에는 쉴 새 없이 화물선들이 오갔습니다. 대부분 건설자재나 화물을 실은 바지선이었고, 드문드문 유람선도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갔습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운하를 따라 내려오는 배들이 마치 고속도로의 자동차 행렬 같았습니다. 수양제의 치적이 오늘날 중국인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역사는 역사로 끝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 하순 항저우(杭州)에 ‘번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BYD전기버스 조립공장을 찾아가 구경하고, 둘째 날은 ‘중국 전기차100인회’가 주관하는 ‘신에너지자동차’ 포럼을 보았으며, 돌아오는 날엔 비행장으로 가면서 대운하의 뒷골목 찻집에 들러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으로 중국의 한 도시를 얼핏 본 셈인데, 대운하의 현재 모습을 구경하니 감회가 색달랐습니다.
대운하는 명나라 때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고, 21세기 들어 남수북조(南水北調, 남부의 풍부한 담수 자원을 물이 부족한 북부로 끌어오는 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운하의 길이가 1,700㎞가 넘고 장강(長江)과 황하(黃河) 등 5개의 거대한 하천을 가로지르는 뱃길을 만들었으니 고대 중국 토목기술의 발전상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대운하의 시발점은 베이징이고 종점이 바로 항저우입니다. 그래서 현지에선 징항(京杭)대운하로 불립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항저우가  시발점이고 베이징이 종점입니다. 항저우에서 쌀 등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모아 권력의 중심부인 베이징으로 실어 나른 운송로였습니다.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베이징이 시발점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항저우가 시발점이었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에도 베이징은 권력의 상징이고, 중국의 부(富)는 항저우를 포함한 상하이 지역에서 창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속담의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란 구절은 지금도 관광 책자에 자주 인용됩니다. “하늘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州)와 항주가 있다.”라는 뜻으로, 이곳이 옛날부터 중국에서 가장 경치 좋고 살기 좋은 곳이었음을 말해줍니다. 13세기 베니스의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여행하고 기록한 ‘동방견문록’에서 항저우의 부유함, 빼어난 경치, 미인에 혹해 ‘천상의 도시’라고 극찬했습니다. 15세기 조선조 때 제주에서 풍랑을 만나 항저우에 표류했던 최부(崔溥)는 그의 '표해록(漂海錄)에 “저자에는 금과 은이 쌓였고, 포구에는 외국 배들이 빗처럼 줄지어 있는 딴 세상”이었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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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항저우에서 보는 대운하의 모습


중국을 잘 모르는 나는 항저우를 그저 유명한 관광지, 즉 옛 도시로만 생각했습니다. 상하이의 명성에 가려져 항저우의 오늘날 진면목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편전쟁 전인 19세기 초에만 해도 상하이는 작은 포구였고, 항저우는 인구 300만 명의 세계 최대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때 유럽 최대의 도시 프랑스 파리 인구가 100만 명이었다니 항저우의 위대함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항저우의 인구는 920만 명입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1,000만 명이 넘는다고 말합니다.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구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저우는 인구도 많지만 마천루가 즐비하게 들어서서 21세기형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새로 건설한 도로 주변은 아름다운 꽃밭으로 조성되어 있고, 국제도시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 중국 정부는 2016년 G-20정상회의를 이곳에서 개최했습니다.
항저우에서 산업이 번창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경제대국 중국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미국 시애틀에 아마존이 있다면, 항저우에는 마윈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있습니다. 해운과 철도의 요충지인 항저우는 유통, 전자제품, 의료기기 및 제약, 자동차제조 및 부품, 기계설비, 식품가공이 발달했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질 정도로 창업이 왕성한 곳입니다. 항저우의 GDP는 1,866억 달러 규모입니다.
그러나 행정구역상 도시 하나로 항저우만 떼어놓고 보는 것은 너무 좁은 관찰인 것 같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항저우는 한국의 서울처럼 외곽 도시들이 포도송이처럼 붙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항저우가 속한 저장성(浙江省) 전체를 한국과 비교해 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저장성의 면적은 중국의 28개 성 중에서 26위로 작습니다만 인구는 8위로 많습니다. 저장성의 넓이는 101,800㎢, 인구는 5,500만 명으로, 국토와 인구 규모로 비교해 보면, 남한을 포개 놓으면 거의 꼭 들어맞는 크기입니다. 저장성의 GDP는 7,670억 달러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전 세계 200여 개 국가의 경제력을 일렬로 세워놓고 저장성을 이 순서 속에 끼워 넣는다면 아마 20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중국의 고속 경제성장에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저장성은 참 좋은 비교대상인 것 같습니다. 저장성 면적은 중국의 100분의 1이고 그 인구는 중국의 25분의 1이니, 중국과 한국의 비율과 같습니다. 중국은 공산당정권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을 목표로 미국과 맞먹는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중국제조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30년까지 GDP 규모에서 미국을 앞설지도 모릅니다. 그때 한국과 저장성의 경제력의 크기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재미있는 관점이 될 것 같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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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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