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終戰)은 북한이 먼저 해야 한다 [신현덕]


종전(終戰)은 북한이 먼저 해야 한다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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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終戰)은 북한이 먼저 해야 한다

2018.10.08

최근 종전과 평화협정이 자주 거론됩니다. 그런데 왠지 믿기지 않습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북한 외무상 이용호(북한 표기 리용호)의 유엔 연설을 들었습니다. 그는 “미국은 70년 전부터 우리(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해 왔으며 수십 발의 원자탄을 떨구겠다고 공갈했고(중략),······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북한)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기를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못하나 봅니다.

지난달 예비역 장교와 부인을 합해 20여 명이 윤동주문학관에서 출발하여 다시 그 지점까지, 서울 성곽을 한 바퀴(네 번에 나누어 걸었음) 도는 순성(巡城)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길 건너 고(故)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동상에 잠깐 참배했습니다. 일행은 그들의 공적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는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최 경무관이 그 부근에서 숨진 것(1968.1.21.)으로 알고 있었는데, 북한군의 총에 맞은 곳은 종로구 자하문로28길 29 청운실버센터 근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청와대까지는 북한군이 사용하는 AK 소총의 유효사거리인 300미터도 안 됩니다. 당시 남파된 북한군 31명은 모두가 특등사수였고, 산악에서 1시간에 10㎞ 이상을 달리는 ‘인간병기’였습니다. 만약 최 경무관이 그 자리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지 못했다면 어떠했을지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우리는 그해 4월에 예비군을 창설했습니다. 북한군은 그해 겨울 강원도에 또 무장공비를 내려 보내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북한군은 주민은 물론 열 살 먹은 초등학생도 입을 찢어 죽였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자위를 위해서”라고 억지를 부리며 가장 강력한 공격용인 수소폭탄과 미사일까지 완성했다고 떠벌렸습니다. 우리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쟁이론을 알고 있습니다만, 공격적인 대응(핵개발 등)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 퍼부은 무자비한 포격과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 때도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북한군은 아무 이유 없이, 경고도 않은 채 우리 영토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는 그때도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신설, 북한의 공격에 대비했을 뿐 어떠한 공격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재 미얀마) 랭군의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우리 대통령을 겨냥한 대폭발로 우리 부총리를 포함하여 각료와 외교관 등 15명이 사망했습니다. 버마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아웅산 국립묘지 암살 폭발사건의 진상 결과 및 버마 정부의 조치상황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은 북한 당국의 명령에 따라 3명의 북한인이 저질렀고, 버마는 북한과 단교하고 정부 승인을 취소했으며 공관원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우리 군경은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전쟁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1975년 판문점에서 도끼로 미군을 살해했을 때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우리 군이 모든 역량을 총집결, 전쟁을 불사하자 북한이 손을 들었습니다. 북한은 서둘러 사과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유일한 사과 기록입니다. 그 뒤로도 강릉지역에 잠수함으로 무장 간첩을 보냈습니다.

전 세계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한 6·25는 전면전이었습니다. 우리 국군 사망자만 약 14만 명에 달하며, 민간인 희생자는 훨씬 많습니다. 6·25 이후 북한이 납치해 간 우리 국민이 400명을 훨씬 넘습니다. KAL 여객기 승무원과 어부, 교사, 관광객, 전북 선유도와 전남 홍도에서 납치된 고등학생들이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를 동족이라면서도 살갑게 대한 적은 없었고, 오직 아픈 기억만 남겼습니다.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했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당한 것은 몇 차례인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방어책을 마련하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종전(終戰)은 우리가 요구할 부분입니다. 역사상 모든 전쟁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인내하지 않았고, 만약 군의 작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 북한의 도발에 일일이 반격했다면 수십 번 전쟁이 시작되었을 겁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은 엄청난 압박에 못 견뎌 북한이 스스로 문을 열거나, 핵을 포함한 모든 도발을 완전히 끝내고 대한민국과 함께 사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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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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