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과 일산의 명암 어디서 왜 차이났을까


분당과 일산의 명암 어디서 왜 차이났을까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


10년 경쟁, 교통과 교육에서 갈렸다


  1990년 당시 건설부의 신도시 건설기획실 기획담당관이었던 C씨는 교양지 '샘이 깊은 물'과의 대담에서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1987년 올림픽패밀리아파트 분양 이후, 서울에서 중대형 아파트 건설은 중단된 상태였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안은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었다.


지난 1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단지. 2000년도 초반까지는 비슷했던 분당과 일산 신도시의 경쟁 구도는 판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분당의 승리로 힘이 실리게 됐다./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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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인구 과밀 해소'와 '주거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C씨는 실무자로서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분당이나 일산을 건설할 때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느냐, 이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적어도 C씨에게 분당과 일산은 서울 거주 중산층 내 상위 집단의 수요를 충족시켜줄 주택 공급원이었다. 정부의 공식 언어로 번안하자면, 전자는 강남의 중산층 인구를 유인하는 자족형 도시였고, 후자는 서울 강서·북 인구를 유인하는 문화 예술 중심의 전원도시였다.


민간 건설사의 요구로 분양가 연동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당시 신도시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180만~200만원대로 거의 비슷했다. 따라서 입지 조건이 좋은 지역에 수요가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정부는 이 수요를 통제하면서 건설사의 자금 조달을 도울 수 있는 방책을 고안해내는데, 주택상환사채 발행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제도는 건설사가 입주 예정자를 대상으로 분양가의 60% 한도 내에서 회사채를 발행하고 만기일에 주택으로 상환하도록 한 것이었다. 입주 예정자가 매입해야 하는 회사채 규모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분양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분당은 5개 신도시의 주택상환사채 발행액 중 약 40%를 차지했다.


사실상 중산층 이하 계층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나 다름없던 이 제도가 계층 재생산의 기제로서 효과를 드러낸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 분당과 일산의 경쟁 구도는 대중 매체를 통해 꾸준히 재생산되었다. 하지만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분당은 경쟁 도시와의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강남이 강북의 부촌을 따돌리며 지금과 같은 위상을 차지한 것이 88올림픽 개최 이후 10여 년이 지나 재건축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처럼 말이다.


  고양 일산 신도시 전경. 사진=연합/중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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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10여 년의 시간은 차세대 성장 동력이 서울의 경제 중심을 옮겨놓기에도, 아파트 단지의 꼬마들이 사교육 산업의 지형을 바꿔놓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교통과 교육은 신도시 간의 위계를 만들어내는 핵심 변수였다. 특히 강남과 분당 사이에 건설된 판교 신도시는 그 격차를 벌리는 데 쐐기 역할을 했다. '선진형 저밀도 전원도시'를 표방한 이 신도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공급 정책의 일환으로 계획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경부고속도로의 특정 구간이 '불패의 신화'를 이어갈 포스트 강남의 확장 축임을 증명해 보였다.


이 시기, 강북의 출판업체들은 파주 출판단지로, 테헤란로의 IT 기업들은 판교 테크노밸리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각자의 업종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건물주의 꿈을 꾸고 있었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5/20181005028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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