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사업은 앞뒤도 안 재나


남북 사업은 앞뒤도 안 재나


유엔 미승인 철도 연결은 결의 위반

제재 완화 가능성 적어 착공식 될까



아무리 중하고 급해도 앞뒤 잴 게 있다. 핵심적인 대목에서 순서가 바뀌면 여지없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요즘 남북 문제를 다루는 청와대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잠시 잊고 지나치는 듯하다. 철도 문제에서는 특히 그렇다. 

  

남정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9일 평양 남북공동선언에서 “올해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받아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이달 중 북녘 철도에 대한 남북 공동 현지조사를 실시키로 하고 유엔사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별문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따져 보면 청와대는 세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순서부터 틀렸다. 정전협정상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유엔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지난 8월 말에는 유엔사 제지로 북측 경의선 구간에 대한 공동 조사가 좌절된 바 있다. 그러니 이번에는 유엔사와 미리 협의해 승인을 받은 뒤 발표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또다시 사전 협의 없이 조사 계획이 발표됐다. 지난 8월 공동 조사의 길이 막히자 일부 시민단체에선 “유엔사가 남북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 아닌가. 문 대통령 방북 때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당 대표의 동행을 요청했을 때와 빼닮았다. 



  

둘째, 국제법을 무시하려 한다. 남북 철도 연결은 유엔 대북제재 위반의 소지가 크다. 안보리 결의 2375호에는 “북한과의 비상업적인, 공공이익을 위한 인프라 사업은 사전 승인 없이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유엔 회원국인 한국은 안보리 결의를 지킬 의무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유엔의 승인 없이 철도 연결을 밀어붙이려는 태세다. 공동 조사를 두고 통일부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제재이행법’ 제정에 참여한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공동 조사 자체부터 제재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백번 양보해 공동 조사는 괜찮다고 치자. 그럼 연내 하겠다는 철도 연결 착공식은 어찌할 건가. ‘공사를 시작할 때 하는 행사’가 착공식의 사전적 의미다. 곧바로 철도 연결 사업이 이어진다는 뜻이니 그 이전에 유엔의 승인을 얻지 않으면 명백한 제재 위반이 된다. 덮어놓고 연내에 착공식을 하겠다고 발표해선 안 됐던 것이다. 


셋째,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공동 조사 계획이 발표된 자리에서 “대북제재와 관련해 유엔사와 협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큰 줄기가 잡혔기에 실무회담은 원활히 추진될 거로 기대한다”고. 마치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활발한 교류를 양해한 것처럼 들린다. 

  

실은 정반대다. 지난달 19일 열린 회담 직후 “양 정상은 대북제재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힌 장본인이 바로 김 대변인이었다. 더욱이 지난달 말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어느 때보다 대북제재를 완전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재를 늦출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다. 이들뿐 아니다.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모두 대북제재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데도 국제사회의 양해 없이 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하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의 손가락질을 피할 길이 없다. 남북 철도 연결은 언젠가 꼭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시기와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면 국제법 위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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