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휠체어 가족여행 [황경춘]


내 생애 첫 휠체어 가족여행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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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휠체어 가족여행

2018.09.20

매년 한두 차례 되도록 많은 가족이 참가하여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 우리 집안의 오랜 관례였습니다. 직계가족 12명이 함께 간 적도 있으나, 대개 가사나 직장 형편에 따라 6~7명이 동행하여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녔습니다.

금년 상반기에는 집안 사정으로 가족여행은 생각지도 못하고 아이들끼리 직장이나 친목단체 휴가여행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2월에 통풍을 앓고부터 갑자기 보행이 어려워지고 그 와중에 집사람이 세상을 떠나 가족여행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충 집안 정리가 끝난 무렵부터, 아이들이 전통의 가족여행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람이 없고 왼쪽 다리가 보행에 불편한 저는 처음에는 극히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셋째 딸이 휠체어를 이용해 관광지를 방문하자는 묘안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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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고.

그녀는 강릉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한 대밖에 없다는 휠체어 예약까지 하고 3박4일의 동해안 관광계획을 짰습니다. 이쯤 되니 제가 가족여행을 반대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지난주의 여행에는 다섯 사람만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정작 휠체어의 묘안을 생각해 낸 딸은 남편이 직장에서 조그마한 사고로 손가락을 다쳐 여행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딸아이 하나는 강릉까지 KTX편으로 가고 아들이 운전하는 차로 세 사람이 별도로 떠났습니다. 휠체어 아이디어를 낸 딸아이가 서울역에서도 휠체어를 주선해 대합실에서 열차가 기다리는 플랫폼까지 편안하게 내려갔습니다. 강릉역에 도착하니 서울역 직원이 수배한 휠체어가 기다리고 있어, 여기서도 편안하게 대합실로 나와, 아들이 몰고 오는 차를 기다렸습니다.

난생처음 타는 휠체어가 이렇게 편리한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이렇게도 없었던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반성했습니다. 이제는 저 자신이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인 복지를 위해 당국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실지로 경험하게 된 이번 여행을 크게 뜻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 차에 합류하여 찾아간 강릉보건소에서는 점심시간인데도 당직 직원이 있어 무사히 휠체어를 대여받아 주문진의 숙소로 행했습니다. 뒷날부터 제가 자가용이라고 이름 붙인 이 휠체어를 이용해, 우리는 양양 해변에 있는 암자, 경포대 해수욕장, 초당두부 식당 마을, 허균 기념공원, 강릉이 자랑하는 커피 공장, 삼척의 광대한 리조트 호텔 등 여러 관광 명소를 아주 편안하게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휠체어를 교대로 밀어주는 아이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관광지에서의 노역(勞役)에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애인과 다름없는 애비가 예상 외로 관광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그들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호화 호텔 식당에도 휠체어를 탄 채 들어가는 것이 처음에는 좀 어색했으나 곧 익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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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동상 옆에서.

거의 모든 관광 명소에 장애인 휠체어를 위한 데크 통로가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 통행이 편리했습니다. 그러나 계단 등 통행에 불편한 곳도 많았습니다. 저는 짧은 거리는 휠체어에서 내려 걸을 수가 있어 이 정도의 불편은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보행이 전연 불가능한 분에게는 이런 사소한 장애물도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장애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 것도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앞으로 보행능력이 옛날 상태로 회복될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읍니다만, 지금 정도라도 휠체어나 다른 보조기구를 이용해 과거처럼 외출을 즐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점에서 이번 휠체어 체험은 큰 수확이었고, 100세 인생을 즐기는 데 많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저 나름대로 가족여행에 참가한 구실을 찾아보았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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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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