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 논란 뒤 조사 현장 망가지고 있다”


“통계청장 논란 뒤 조사 현장 망가지고 있다”

[인터뷰]최기영 통계청 노조위원장


“정치적 이용 우려해 시민들이 통계청 조사 거부”

“부실 조사→정확성 하락→국가통계 기반 흔들”

“정치인 발언 신중해야..독립성 강화 방안 필요”

12일 통계청 간담회, 국감 전 국회 토론회 논의


   “금번 통계청장의 경질이 납득이 되지 않기에 제 조사 자료가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통계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결론을 내고 필요한 자료만 갖고 해석하는 오류로 인한 재앙은 누구 책임입니까. 그간 (통계조사) 담당자의 열의에 (따라) 참여했지만 (앞으론) 조사 참여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납세자이자 조사 대상자가 있음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최기영 통계청 지부장(노조위원장)은 최근 이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통계청 조사 응답자로 선정된 한 시민이 통계 신뢰성을 우려하며 조사 거부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응답자들이 조사원들에게 ‘통계 조작할 텐데 왜 응답하느냐’며 응답을 거부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26일 면직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왼쪽 사진). 오른쪽은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지난달 2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며 “지난 1년 2개월 동안 큰 과오 없이 청장직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지난달 2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최근 통계에 대한 여러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통계청이 되려면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최기영 통계청 노조위원장은 사진 촬영을 사양해 인터뷰 기사에 사진을 넣지 않았다.[연합뉴스, 통계청 제공]/워싱턴코리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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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26일 17대 통계청장에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임명했다. 강 신임 청장은 홍장표 청와대 전 경제수석과 같은 진보 개혁 성향의 학현학파 출신이다. 이 같은 인사에 따라 작년 7월 취임한 황수경 전 청장은 1년2개월 만에 교체됐다. 통계청장이 이렇게 단기간에 바뀌는 것은 11대 청장(2008년 3월~2009년 4월) 이후 약 10년 만이다.


황 전 청장은 지난달 27일 이임식 이후 이데일리와 만나 ‘가계동향조사 소득 통계 신뢰도 문제 때문에 경질된 것인지’ 묻는 질문에 “저는 (사유를) 모른다. 그건 (청와대) 인사권자의 생각이겠죠. 어쨌든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 윗선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날 통계청 노조는 성명에서 “(청장 교체는)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통계 조작하려는 인사”라고 주장하는 등 야당의 공세가 잇따랐다. 임종석·장하성 등 청와대 관계자들은 외압 의혹·조작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통계청이 직무에 소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시계열적으로 이것(가계동향조사)을 분석한 것은 오류”라며 통계청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 같은 정치권의 공방이 불거지고 2주일이 흘렀지만 확인된 팩트는 많지 않다. 공무원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입을 닫았다. 정치권에서 뚜렷한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강 신임 통계청장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겠다”고 했지만, ‘통계청의 통계를 믿을 수 있나’라는 국민들의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조사 거부의 후유증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위원장은 “시민들이 응답을 계속 거부하면 조사가 부실하게 된다”며 “조사가 부실해지면 통계청 조사의 정확성, 신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가 통계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고 꼬집었다. 2000여명의 조사원들이 매달 조사하는 각종 통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최 위원장은 “통계 조작이라고 몰아붙여서 통계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가 망가지는 것”이라며 “통계 조사 현장을 망가뜨릴 수 있는 정치인의 언어를 무작정 옮기는 것을 지양해달라”고 당부했다. 통계청은 오는 12일 노조 주관으로 직원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이어 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통계청 독립성 강화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다음은 지난 7일 대전정부청사 인근에서 최 위원장과 통계청 최근 상황과 향후 대책을 인터뷰 한 내용이다. 


통계청장 경질 이후 통계청 내부 분위기는?

제일 걱정스러운 점은 통계청장 논란이 불거진 뒤 조사 현장이 망가지고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통계청 조사에 흔쾌히 응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응답자들이 조사원들에게 ‘통계 조작할 텐데 왜 응답하느냐’며 응답을 거부하고 있다. 조사원들이 응답을 받는데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다. 노조 차원에서 현장을 주시하고 있다. 


응답자들이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거부했나?

조사원을 통해 받은 문자를 하나를 보여드리겠다. ‘금번 통계청장의 경질이 납득이 되지 않기에 제 조사 자료가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통계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결론을 내고 필요한 자료만 갖고 해석하는 오류로 인한 재앙은 누구 책임입니까. 그간 담당자의 열의에 참여했지만 (앞으론) 조사 참여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납세자이자 조사 대상자가 있음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문자다. 


게다가 통계를 놓고 정쟁이 심화되면서 조사 환경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시민들이 응답을 계속 거부하면 조사가 부실하게 된다. 조사가 부실해지면 통계청 조사의 정확성, 신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가 통계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이런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통계청 조사가 많은가. 

주기적으로 하는 통계청 조사가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다. 고용·산업·물가동향, 건설경기동향, 가계동향, 경제활동조사, 사회조사, 농가·어가경제 조사 등 다양하다. 통계 조사에는 2000명 가량의 공무직과 공무원이 투입된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왜 교체됐다고 보나?

교체한 것은 인사권자 판단이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황 전 청장은 통계청, 통계의 중립성을 지키는데 손색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특별한 사유 없이 인사 발표가 났다. 그래서 그런 항의를 한 것이다.(통계청 노조는 지난달 27일 성명에서 “이번 청장 교체는 앞으로 발표될 통계에 대한 신뢰성 확보를 담보하기 어렵게 할 것이며 통계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논평했다.)


신임 통계청장이 임명 뒤 정권 입맛에 맞는 통계가 나올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

통계청장이 바뀌어도 통계를 조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통계조사 시스템 때문이다. 현장조사, 지방청 검토, 본청 검토까지 4~5번 이상이나 확인·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윗선에서 숫자 하나를 조작하면 전국에서 집계되는 나머지 수치와 틀려진다. 로데이터가 공개되는데 어떻게 숫자를 조작하겠는가. 게다가 직원들 개개인이 통계 전문가다. 윗선에서 강제적으로 수치를 고치려고 해도 직원들이 가만 있지 않는다. 현장조사에는 민간인 신분인 공무직과 공무원이 투입된다. 오히려 ‘숫자 잘못 만지면 큰일난다’는 게 통계청 조직 문화다. 


      


오늘(7일) 강신욱 청장과 노조가 첫 공식 면담을 했다. 어떤 논의를 했는가.

30분 정도 만나 통계·통계청 독립성 강화를 위한 활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강 청장은 노조 제안에 공감했다. 앞으로 독립성 강화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통계청 독립성 강화 활동이란?

첫째, 통계청 조직 변화다. 기획재정부 산하인 조직 체계를 어떻게 할지다. 국가통계위원회 형식, 국무총리 산하, 국회 산하 형식이 있을 수 있다. 둘째, 청장 임기다. 현재는 청장의 임기 규정이 없다. 셋째, 청장 청문회를 도입할 지다. 한은 총재 청문회처럼 통계청장의 전문성, 행정능력 을 검증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조직법 등을 개정해야 해 실현 가능성이 낮지 않을까.

국회에서 토론을 하기로 했다. 의원들의 진정성이 있다면 법안이 통과될 것이다. 


그밖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통계 분석관을 뒀으면 한다. 고용, 가계, 복지 등 국민 관심사인 통계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분석관이 최소 2명 이상은 있었으면 한다. 지금은 각 분야 과장 등이 통상적인 업무를 하면서 청와대, 기재부, 언론 등을 상대하고 있다. 전화해서 자료 뽑아달라는 연락이 쇄도한다. 전화하면 당장 자료가 나오는 줄 안다. 직원들은 밤새고 있다. 이처럼 통계청에 과부하가 걸렸다.


조사를 진행하는 공무직·공무원들은 모욕감을 당하면서 응답을 받고 있다. 통계청에서 왔다고 하면 쳐다 보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응답자들을 설득해서 응답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응답자에 게 보상금을 더 많이 줘야 한다. 보상금이 늘수록 응답률도 높아질 수 있다. 


언론에도 당부하고 싶다. 국회의원들 말을 걸러서 보도했으면 한다. 통계 조사 현장을 망가뜨릴 수 있는 정치인의 언어를 무작정 옮기는 것을 지양해달라. 신중하게 고민해서 용어 선택을 해달라. 통계 조작이라고 몰아붙여서 통계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가 망가지는 것이다. 


노조의 향후 계획은?

오는 12일 노조 주관으로 직원 간담회를 열려고 한다. 10월 첫째 주에 통계청 노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동 주최로 통계청 독립성 강화와 관련한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세종=이데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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