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멀어진 아이들 [한만수]


흙과 멀어진 아이들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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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멀어진 아이들

2018.09.10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를 둘러싸는 외부의 모든 요소와 조건을 환경이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환경과 함께해 왔으며, 인류가 현재의 문명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환경의 역할이 큽니다. 환경은 햇빛, 물, 공기, 흙, 동물, 식물 등의 자연환경과 도로, 집, 언어, 법 등 사람들의 문화에 따른 인공 환경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자연환경에서 흙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은 흙 위에서 살면서, 흙에서 먹을 것을 구해 생명을 유지하다, 나이가 들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세상의 모든 식물이 살게 하는 터전도 되지만 소생(蘇生)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까닭에 인간들도 흙을 디디며 살면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흙과 동화되어 몽골의 넓은 초원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사는 사람들이 여유롭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유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요즈음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흙을 밟을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길이며 골목은 포장이 되어 있어서 학교 운동장에 가야 그나마 흙을 밟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흙을 덮어 버린 도시의 아이들은 예전처럼 또래들끼리 땅에 퍼질러 앉아 흙장난하며 노는 방법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학교 운동장, 혹은 동네 넓은 공터 등에서 동네 아이들이 또래들끼리 가이센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일본어인 가이센(會戰,かぃせん)은 대규모 병사들이 격돌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이센은 오징어 가이센, 십자 가이센 등이 있습니다.
오징어 가이센은 땅에다 괭이나 굵은 나뭇가지 같은 거로 오징어 모양을 그립니다. 인원수는 제한이 없고, 5명이든 10명이든 서로 편을 짜서 한 팀은 공격하고, 다른 팀은 방어를 하는 형식으로 놀이를 합니다.

방어를 하는 팀이 오징어 그림 안으로 들어가면, 오징어 그림 안에 있던 방어팀은 공격팀이 오징어 머리 모양에 들어 있는 돌을 집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막습니다. 공격팀은 일방적으로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어팀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금을 밟으면 죽은 거로 간주해서 퇴장해야 합니다.

단순한 놀이지만 서로 이기기 위하여 레슬링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밀다 보면 금방 인절미처럼 흙투성이가 됩니다. 옷이 찢어지는 경우도 있고, 넘어져서 얼굴이며 팔에 상처가 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놀이는 수업시간을 알리거나,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찾으러 올 때까지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흙범벅이 된 옷을 툭툭 털어버리거나, 상처 난 곳을 대충 어루만지며 집으로 가서 밥상 앞에 앉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서로 밀치고 당기고 넘어트리는 놀이를 한 덕분에 밥은 반찬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꿀맛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땅바닥에서 뒹굴며 놀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놀았다가는 밥상 앞에 앉을 수도 없습니다. 단단히 꾸중을 듣고 몸부터 씻어야 하거나, 어디 상처라도 났다면 상대방 아이 부모에게 치료비를 내지 않으면 당장 고소를 하겠다며 싸움을 걸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서로 껴안고 땅바닥에서 뒹굴며 게임을 하는 것은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지만, 전신 운동이 될 뿐만 아니라 인성을 다듬는 데는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편에 대한 신뢰감은 믿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금을 밟으면 안 된다는 등의 게임의 법칙도 은연중 사회생활을 하는 데 법을 준수하는 교육이 되었을 것입니다.
밖에서 무리를 지어 뛰어놀 수 있는 놀이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깡통 차기’를 비롯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막대기로 공을 쳐 내는 ‘베이스볼’, ‘숨바꼭질’도 숨이 막히도록 긴장이 되는 놀이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숨을 곳을 찾아 뛰어다닙니다.

여름밤에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두엄 뒤에 쪼그려 앉아 숨기도 하고, 뒷간에 숨기 위해 어른이 볼일을 보고 계시는데 문을 덜컥 열었다가 꾸중을 듣기도 합니다. 그래도 술래가 엉뚱한 곳을 찾아다니면 숨은 곳에서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소리죽여 킥킥 웃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요즘까지 전승이 되는 놀이는 ‘숨바꼭질’입니다. 하지만 골목 전체, 혹은 공터 전체를 배경으로 놀이를 하지 않는 탓에 긴장감이 떨어져 예전만큼 재미가 없을 겁니다.

예전 놀이들의 공통점은 ‘비석치기’ 라든지 ‘땅따먹기’ 여자애들이 즐기는 ‘고무줄뛰기’ 같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단체로 하는 놀이라는 점입니다. 자연스럽게 나이도 두세 살 많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두세 살 적은 아이들도 형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돈독한 정을 쌓아갑니다. 나이가 들어도 함께 뛰어놀던 사이라서 형님, 동생이라 부르며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됩니다.

요즘에는 골목이나 주택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보기 힘듭니다. 도시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태권도 도장으로 피아노 학원으로 직행을 합니다, 농촌도 도시의 아이들과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동네에 한두 명, 혹은 서너 명의 초등학생을 둔 젊은 농부들도 있지만, 자식들이 들판에서 뛰어놀게 놔두지 않습니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원 버스에 태워 보내거나, 집에서 공부를 하라는 명분으로 논밭으로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은 어린 자식을 논밭으로 데리고 가면 남들이 볼 때 자식을 학대하거나, 자식을 부려 먹는 것쯤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부모만 자식을 외톨이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도 아이들을 집안에 가두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뛰어놀면서 얻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아이들끼리 놀게 만들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거나,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등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놀이터에서 안전사고라도 나면 전국 놀이터 관리자들은 비상이 걸립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은둔형 외톨이’라든지 ‘분노조절 장애’ 같은 것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닙니다. 자식을 다른 집 자식보다 많이 공부시키고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사육하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자식의 개성이나, 희망, 특기 같은 것은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고 부모의 생각과 관념대로 키우는 환경은 동물을 ‘사육’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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