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있는 빗물저류배수시설도 사용 못해..."올해도 물바다"


서울시, 있는 빗물저류배수시설도 사용 못해..."올해도 물바다"

양천구·강서구 상습 침수 막으려 만들었지만

市 "비 갑자기 와서 가동못해"
50억 신촌 하수관도 효과없어

전문가, 시설물 잘못 만들어

  서울시가 침수 피해를 막겠다며 새로 만들거나 정비한 시설들이 최근 폭우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아예 가동조차 못했다. 시에서 애초에 설계를 잘못했거나 대응이 미숙해 세금 1400억원이 들어간 시설들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다.

시는 이번 폭우에 다 지어놓은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가동하지 않은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은 침수가 잦은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시에서 지난 2013년 착공했다. 


공사에는 예산 1380억원이 투입됐다. 지하에 4.7㎞ 길이 터널을 만들어 하수관로로부터 빗물을 받아내는 방식이다. 시설은 지난해 7월 임시 가동을 시작했다. 양천구와 강서구 전역 하수로와 연결돼 있으며, 시간당 65~75㎜의 빗물을 넘치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시는 태풍 솔릭으로 폭우가 예상된 지난달 23일 '침수 피해가 발생할 정도의 강수가 계속되면 시설을 즉시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28일 오후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는 물바다가 됐다. 양천구는 신월 5동을 중심으로 시간당 최대 5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주택과 상가 156가구가 침수됐다. 양천구에 따르면 복구 지원금에 1억5000여만원이 들어갔다. 강서구도 한 시간 만에 폭우 65㎜가 쏟아져 150여 가구가 침수 피해를 봤다.

본지 취재 결과 두 곳에 내린 비는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의 최대 수용 능력보다 적은 양이었다. 수년간 막대한 혈세를 들인 시설을 만들어 놓고도 전혀 쓰지 못하고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상황을 판단해 시설 가동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다"고 설명했다. 28일 호우는 오후 7시 30분쯤부터 1시간 동안 서울에 집중됐다. 기상청은 7시 40분 서울 지역에 호우특보를 내렸다. 기상청의 특보 발령 이후 집중호우가 잦아질 때까지 40~50분의 시간이 있었지만 끝내 배수시설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하수관로를 개방하는 데는 3~4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시에서는 기상청 예보가 미비한 탓도 있다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기상청에서 예비 특보도 내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골든타임(사고 발생 후 대처가 이뤄져야 하는 최대 시간)을 놓쳤다"며 "양천·강서 지역 상황이 파악된 뒤에는 이미 비가 잦아들기 시작해 가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수시설은 언제 어느 때 갑작스럽게 폭우가 내려도 신속히 가동할 수 있도록 운영 주체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시가 지난 2013년부터 2년간 진행한 신촌 일대 하수관 정비 사업도 마찬가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당시 공사에만 세금 50억원이 들어갔다. 시는 2015년 공사를 마친 뒤 "신촌로터리 일대 침수 피해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촌 일대는 이번 폭우로 도심 지역 중 유일하게 심각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신촌 일대는 지난달 28일 오후 7시 40분부터 빠르게 물이 차기 시작해 사람과 차량 통행이 어려웠다. 가게 문턱까지 물이 차올라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도 많았다.

                   지난달 28일 밤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 침수모습 /마포구·트위터

조원철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신촌 일대 도로는 대부분 포장이 돼 있고 경사가 져 빗물이 땅속으로 흡수되지 않은 채 빠르게 흘러간다"며 "하수관 정비가 아니라 빗물 유입구를 늘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문제 원인 파악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침수는 서대문구에서 차도와 보도 간 턱을 없앤 탓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치구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 측은 "해당 공사를 한 것은 맞지만, 차도와 보도 사이에 배수관이 설치돼 있어 이번 침수와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구본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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