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업체들 "정부는 탈원전 70년 걸린다지만… 우린 곧 망한다"


원전업체들 "정부는 탈원전 70년 걸린다지만… 우린 곧 망한다"


핵심기술 가진 우리기술 "올해 매출 반토막

인력들 회사 떠나"


정부에 찍힐라 노출 꺼렸지만 "어차피 못버틸 것

회사명 써라"


  원전 부품 중견업체 '우리기술'은 원자로 내부가 과열되면 자동으로 원전 가동을 정지(셧다운)시키는 감시제어시스템(MMIS)을 공급한다. MMIS는 원전 폭발을 막는 핵심 기술로, 사람으로 치면 '뇌신경'에 해당한다. 오(誤)작동 시 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과거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했던 시스템을 우리기술이 국가 R&D(연구개발) 개발 예산을 지원받아 국산화했다.


우리기술이 국산화한 감시제어시스템 MMI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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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기술의 원전 부문 매출은 작년 250억원에서 올해 140억원, 내년엔 100억원으로 쪼그라든다. 한수원이 보통 1년 전에 일감을 발주하기 때문에 내년도 매출 규모는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내년까지 신고리 5·6호기에 납품하고 나면 회사 매출의 70%인 원전 부문은 사실상 공중으로 사라진다.


지난 1년 동안 우리기술의 원전 설계 인력 7명이 회사를 자발적으로 떠났다. 원전 부문 인력 140명 중 5%에 불과하지만 회사 경영진에겐 심리적 충격이 컸다. 회사 관계자는 "설계 인력은 회사 경쟁력의 핵심이라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히려 직원들이 먼저 이직했다"며 "정부는 '탈원전에 70년이 걸린다'고 하지만, 우리가 망하는 건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원전업체들은 보통 회사명을 공개하길 극도로 꺼린다. 한전·한수원 등 공기업이 발주하는 공사가 100%여서, 정부 정책에 반하는 언급을 하면 사업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기술 임원은 "어차피 내년 이후엔 회사가 버틸 수 없다"며 "회사 이름을 밝혀도 된다"고 했다.


감원 시작된 원전업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 원전산업 생태계가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생태계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중소·중견 협력업체들에서 인력 감축, 자발적 이직이 시작되고 있다. 작년에 공론화를 거쳐 가까스로 재개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끝나면 이후 국내에선 대규모 일감이 없어진다. 한수원은 지난 6월 정부 방침에 따라 신규 원전 4기 건설을 백지화했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백지화 역시 유력하다.


       


수주 절벽이 나타나자 원전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감원을 시작했다. 원자력 핵심 부품인 센서를 공급하는 A사는 지난 4월 원전 인력 30%를 정리해고했다. 원자력 사업 부문 전체 70명 중 경력 15년 차 이상 부장급을 중심으로 20명 감원한 것. 이 업체 관계자는 "정부와 한수원은 '힘들더라도 사우디·체코 등 해외 원전 수출 때까지 버텨보라'며 속 모르는 얘기만 한다"며 "해외 원전을 수주한다 해도 공사 시작 때까진 최소 5년이 걸릴 텐데 그때까지 버틸 중소기업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했다.


원전부품·정비업체 B사 송모 사장은 올해 UAE 출장을 14번 다녀왔다. 원전 유지·보수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업체는 UAE 바라카 원전에도 납품하고 있다. 송 사장은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일감이 줄어들어서 적자가 쌓이고 있다"며 "아예 공장을 UAE로 옮기는 걸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하필이면 지금…업종 전환도 어렵다"

원전 업체들은 "탈원전 시점도 최악"이라고 했다. 대부분 원전 업체들은 원전 부문과 조선·철강·전자 등 다른 업종을 겸영(兼營)하는데, 조선·철강 경기(景氣)마저 안 좋기 때문이다. 원전에 용접 관련 제품 및 서비스를 공급하는 C사는 원전 사업 매출이 전체의 5%이고, 나머지는 조선해양 부문이다.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원전 부문을 키워왔다. 2015년과 2016년 원전 매출은 60억원에 달했으나, 작년엔 2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D사는 올 들어 원전 부문 영업 인력을 9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이 업체 관계자는 "신한울3·4호기라도 지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불확실하고, 천지·대진은 아예 백지화돼 판로가 막혔다"며 "어떻게 회사를 유지하란 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4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운 원전 산업이 무너지는 징후가 보인다"며 "원전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곳인데, 이들이 무너지면 우리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묵 기자 안준호 기자 조선일보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1/2018090100191.html#csidx100589e638f1256b19d843b2324b5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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