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월평동 여성 해고 자살사건' 보도는 사실이었다


'대전 월평동 여성 해고 자살사건' 보도는 사실이었다


'최저임금 자살 사건'

식당 해고 후 세 자녀를 남겨둔 채 목숨 끊어

50대 아닌 30대


대전 둔산서에서 기사 내리라는 연락받아

결국 해당 기사 삭제

경찰, 자살 사건 자체가 없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있었다" 나중에 모두 확인된 사항

한국경제, 유족들 신상이 노출돼 사과


<한경닷컴 보도의 전말>


①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지난 24일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란 한경닷컴 기사가 당일 오전 11시42분부터 오후 6시27분까지 게재됐다 삭제된 뒤 논란이 일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사실을 허위로 가공했다는 ‘가짜뉴스’ 주장이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 제기되더니 급기야 기사의 팩트 및 삭제 배경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까지 공방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더 이상 이 논란이 커지기 전에 해당 기사를 취재했던 경위와 삭제 배경 등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두 꼭지 기사를 싣습니다. 첫번째 <①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동 다둥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는 한경닷컴에 올렸다 삭제한 기사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보강취재한 내용입니다. 두번째 <②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는 한경이 이 사건을 접하게 된 보도 배경과 취재 과정, 사실 여부 등을 밝힌 것입니다. 


한국경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깎아내릴 의도를 갖고 이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작성 당시에도 없던 사실을 만들어내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대전 월평동에 살던 고(故) 김모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 자녀를 남겨둔 채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새 임대         주택에 입주한 김 씨 막내딸(초3)이 할아버지 옆에서 설거지를 돕고 있다. /이호기 기자


“엄마는 생전에 저희들 학교 보내고 나면 항상 일거리부터 알아보셨어요. 그런데 올들어 알바 자리 하나 못구하셨죠.”(김모 군·중1)


김 군 어머니인 김모 씨(35)는 지난달 10일 대전광역시 월평동의 한 다세대주택 단칸방에서 3남매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전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관할인 둔산경찰서는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자살 동기는 ‘생활고 비관’으로 기록됐다.




김 군은 아직도 그날 아침을 잊을 수 없다. 화장실 문이 잠겨 있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문을 열려고 낑낑댔다. 역부족이었다. 근처에 사는 같은 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자물쇠를 땄다.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둥이 엄마’인 김 씨는 미혼모였다. 김 군이 엄마 성을 따른 이유다. 김 씨의 유년 시절도 불우했다.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했던 친정 아버지는 김 씨가 초등학교 시절 이혼했다. 홀로 김 씨를 키웠다. 김 씨는 가난했지만 심성만은 착했다. 김 씨 아버지는 “(김 씨가) 어렸을 때 밖에서 떠도는 개가 보이면 다 데려왔다”며 “좁은 집구석에서 20~30마리는 족히 키웠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가난이 싫어 가출을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여기저기 떠돌다 13년 전 강원도 양구에서 남편을 만났다. 김 군 아래로 남동생(초6)과 여동생(초3)이 잇따라 태어났다. 남편은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김 씨는 아이들만 데리고 수 차례 이사를 다녔다. 경기 남양주, 전남 고흥, 광주, 강원 춘천 등을 거쳐 3년 전 대전에 왔다. ‘보증금 50만원짜리 월셋방’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는데 마침 대전 월평동에 저렴한 셋방이 몰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씨를 포함한 네 식구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 18만원짜리 비좁은 원룸에서 살았다. 그 일대에서도 가장 낡은 빌라의 꼭대기층이었다. 아이들은 매일 가방이나 짐을 들고 3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렸다. 김 씨는 붙임성이 좋은 막내딸을 항상 옆에 끼고 잤다. 


김 씨는 3남매를 부양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처음엔 집근처 갑천역 앞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했다. 이후 전단지 배포, 액세서리 포장, 식당 종업원 등 일용직을 전전했다. 올해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일거리가 뚝 끊겼다. 주변에선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군은 “엄마가 올해 일을 제대로 못하셔서 생활비 때문에 더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월평동 노인정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김 씨가 잘못되기 전까지 식당에 나가는 걸로 알고 있었다”며 “생활이 어려웠지만 내색은 잘 안했다”고 전했다. 인근 슈퍼 주인은 “애들 여럿 키우면서 월세 내려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가 작년 말 일했던 한 식당의 여주인은 “얼마 전 김 씨가 다시 일할 수 없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우리도 여력이 없어 거절했다”며 “힘들어하는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이 식당에선 점심 때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명 쓰고 있지만, 손님이 많은 저녁에는 가족들이 모두 나와 일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김 씨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월 94만원의 수급비에만 기대야 했다. 그런데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김 군의 교복값으로만 30여만원이 나갔다. 초등학교 6학년인 김 군 남동생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막내딸 우윳값도 연체됐다. 에어컨조차 없는 월셋방에서 3남매와 함께 폭염을 고스란히 감내했던 김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3남매의 양육권을 갖게 된 아이들 할아버지는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측의 도움을 얻어 모처에 새 거처를 구했다. 아이들도 최근 전학 절차를 마쳤다.


아이들 할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명랑하게 자라준 3남매가 고마울 따름”이라며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만큼 애들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 무슨 일이라도 해서 제대로 키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②"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전 월평동에 살던 고(故) 김모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 자녀를 남겨둔 채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씨가 사망 직전까지 세 자녀와 함께 거주했던 원룸 앞에 쌀과 휴지 등이 쌓여있다. 이 쌀과 휴지 등은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제공한 것이다. /조재길 기자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30일부터 ‘2018 자영업 리포트’를 게재했습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다 경기 침체 여파로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담은 시리즈였습니다. 시리즈 반향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시리즈가 한창 나가던 어느 날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자영업 리포트의 내용에 공감한다며, 최근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발생했던 일을 꼭 얘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요즘 화두인 ‘최저임금 이슈’라고 했습니다.



1. 사실 확인, 어떤 과정 거쳤나
부부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한 뒤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는 제보자는 수 차례 전화 통화에서 ‘숨진 분(김 모씨)이 대전 월평동에 거주했다는 점, 50대 여성이란 점, 식당에서 일하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해고됐다는 점, 여러 일을 알아보다 결국 실패했다는 점, 중학교 등에 다니는 자녀가 두 명 있었다는 점, 자신의 월셋집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는 점, 장례식장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슬피 울었다는 점, 기초수급자는 아니었다는 점, 아이들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최근 이사를 갔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기사화를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추가 취재를 위해 관할 경찰서인 대전 둔산서에 연락했습니다. 수차례 확인 끝에 경찰 중 한 명에게서 “비슷한 변사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해당 경찰은 “유사한 자살 사건이 월평동에서 있었으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자살이 확실시되고 유서가 없으면’ 바로 수사종결 처리된다. 그래서 최저임금 때문인지 사유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해당 사건이 그 지역에서 있었다는 기초적인 내용이 파악됐고, 사유는 제보자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가급적 김 씨 유족이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자녀가 중학생인 점 등 조금 상세한 정보를 뺐습니다.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장례식장에서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한참 울더라’는 증언도 싣지 않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파급이 더 클 수 있는 지면 게재는 처음부터 배제했습니다.

24일 정오쯤 독자적인 판단으로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란 제목의 ‘8줄짜리 짧은 기사’를 한경닷컴에 띄웠습니다.(한경에서 준데스크인 차장 이상 기자가 온라인 기사를 출고할 때는 자신의 책임 아래 출고할 수 있습니다.)



2. 기사는 왜 내렸나
해당 기사를 삭제한 것은 같은 날 오후 6시를 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대전 둔산서에서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삭제 요청을 해왔습니다. “둔산서 소속 경찰한테도 변사 사건을 확인했다. 오보가 명백하다면 당연히 조치하겠지만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둔산서 관계자는 “기사 내용에 맞는 변사 사건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 내부 시스템에서 관내 변사 사건을 검색했을 텐데 자살 시기를 7~8월 전체로 확대해도 없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월평동에서 여성의 자살 사건이 아예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추가 확인 과정에서 이 관계자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으나 나이와 수급자 여부가 다르다”로 말을 바꿨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한 나이와 수급자 여부는 어떻게 되냐. 기사에 맞게 반영하겠다”고 기자가 요청했으나, 해당 관계자는 “알려줄 수 없다”며 기사 삭제만 줄곧 요청해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당 기사는 온라인에서 3000개가량 댓글을 모으면서 자칫 김 씨 유족의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됐습니다. 일부 네티즌이 김 씨 자녀들이 다니는 초·중학교를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와 수급자 여부가 다르다’는 게 기사의 본질은 아니지만 “팩트가 틀리다”는 경찰 얘기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기사 내용 중 ‘알려졌다’ ‘주변 지인의 설명이다’ ‘전해졌다’ 등의 표현을 썼으나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해당 기사를 당일 온라인에 올린 지 6시간여 만에 내린 이유입니다.

3. ‘가짜뉴스’ 아니다
해당 기사가 삭제되고 난 뒤 일부 온라인 매체에서는 “변사 사건 자체가 없었다”는 둔산서 주장만 기초로 ‘오보’라고 단정하고, 한경이 마치 없던 사실을 가공해 기사를 작성했다가 황급히 삭제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급기야 이는 ‘가짜뉴스’ 논란까지 일으키며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습니다. 애시당초 제보를 기초로 최소한의 팩트를 보도하려 했을 뿐 사실을 왜곡시키려는 어떤 의도가 없었기에 한경 보도가 정파 논리에 휘말리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고, 원치 않았던 일입니다.

다만 처음 온라인 기사를 게재했을 당시 완결성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선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연령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도 중대 착오였다고 생각합니다.

유족에게는 더욱 미안합니다. 이번 논란으로 어느 정도 신원이 추정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기사를 내린 후에도 가급적 대응하지 않으려 했으나 ‘월평동에 자살 사건 자체가 없었는데 날조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가짜뉴스’ 논란은 매우 유감입니다. 기사 작성의 취지나 의도를 무시한 채 마치 한경이 허위 사실을 날조해 최저임금 인상을 중심으로 한 소득주도성장에 흠집을 내려 했다는 식의 일부 보도는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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