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의 눈물


통계청장의 눈물 


조선일보 이진석 논설위원


   전직 총리 한 분이 "내가 통계청 때문에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바꿨다"고 했다. 1970년대 초 미국 유학 때 한국 경제와 주요국 경제를 비교하는 논문을 쓰겠다 했는데 지도교수가 단칼에 퇴짜를 놓더라고 했다. 교수가 "유감스럽지만, 한국 통계는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도 신뢰할 수 없어 안 된다"고 해서 결국 다른 주제로 바꿔 논문을 썼다 했다. 한때 중국은 31개 성(省)·시(市)·자치구의 GDP를 다 더하면 국가 GDP보다 커진다고 했다. 우리 통계도 그런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통계청은 오래 찬밥 신세였다. 1990년에 비로소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서 독립해 간판을 달았고, 통계청장은 2005년에야 1급에서 차관급으로 승격됐다. 당시 "통계청장이 무슨 차관급이냐"는 정부 내 여론에 밀려 말을 꺼내고도 1년 넘게 걸렸다. 통계청장 자리는 전문가 대신 관료들이 대물림하다 2009년 처음으로 민간 출신이 나왔다. 




지금 통계청은 직원이 3000명이 넘는 조직으로 컸다. 직접 작성하는 통계가 60종이고, 통계청 승인을 받아 각 부처가 작성하는 통계가 385개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에 작성을 승인해주고 관리하는 통계까지 더하면 1000개가 넘는다. 이제 어느 국제기구도 정확성과 신뢰도에서 우리 통계 품질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갑작스레 교체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그제 이임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임사에서 "통계청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통계청의 독립성, 전문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고 했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는 대목도 있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고용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으로 보느냐" 물으면 "내가 점쟁이냐" 받아쳤던 여장부 스타일이다. 이날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경질에 가슴에 맺힌 게 있었을 것이다. 


본인은 잘린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고용·소득·분배가 나빠진 통계가 나오면 이런저런 해석으로 청와대를 적극 방어해야 했는데 반쯤 손을 놓아서 눈 밖에 났다는 말도 나온다. 어쨌든 대한민국 정부 역사에 경제가 나빠졌는데 그 책임을 통계청장이 지는 희한한 사례가 기록되게 됐다. 전무후무할 것 같다. 이제 다음 통계청장이 어떤 통계를 내놓아도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싶다. 한국 통계를 아무도 믿지 않는 수십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8/2018082803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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