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전에 얽힌 추억 [황경춘]



자동차 운전에 얽힌 추억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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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운전에 얽힌 추억

2018.08.28

현역 시절 직장에서 쓰던 자동차를 퇴직 후에도 쓰고 있다가, 20여 년 전 딸아이에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운전면허증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10년 전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갱신을 했습니다.

주민등록증 제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닌 정든 이 운전면허증을 8월 28일 전에 적성검사 후 갱신하라는 경찰서의 공문을 받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반납을 결심했습니다. 물론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고, 90줄 중반에 들어서 체력과 기력이 현저히 떨어진 지금 자동차 운전을 시도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10년 전 면허증을 갱신한 것은 ‘혹시나...’ 하는 비상시 생각 때문이었을 뿐입니다. 사실 차를 없앤 후에도 여러 번 자동차 운전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운전대를 잡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딸아이 말로는 2003년에 해외여행 갈 때 인천공항까지 자기 차로 간 뒤, 그 차를 우리 집 주차장에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니 아마 그것이 저의 마지막 자동차 운전이었을 것입니다.

20대 초반 미군부대에서 잠깐 일할 때 미군 동료들로부터 자동차 운전을 배웠습니다. 당시 광복 직후의 고향 경상남도 남해의 군청 소재지는 인구 3천의 소도시로, 목탄가스로 움직이는 버스와 트럭이 약 5~6대 있을 뿐 도로는 극히 한산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정에서 얼마 동안 연습을 한 후 겁 없이 도로 주행도 해보았습니다.

그때는 그저 취미로 배웠고 악 10년 후 미국 언론사에 취직할 때까지 실지로 자동차를 운전할 생각이나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로서 취재활동을 하면서 운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회사에는 운전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 직원이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택시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는 극히 불편한 1950년대 말의 서울 시내 교통사정이었습니다.

당시엔 운전교습소도 없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익힌 운전경험을 되살리며, 직장 운전기사에 부탁해 한가한 시간에 운전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교통사정은 극히 한산하고 광화문 네거리조차 교통신호는 없고 교통순경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할 때였습니다. 운전연수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따낸 운전면허증이었습니다. 야간통행금지령이 있을 때나 주간근무가 끝나 퇴근하면 회사차를 집 차고에 주차해, 가끔 있는 야간 긴급 취재 떄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자동차는 제가 근무한 외신 언론기관에서는 영문 타자기와 더불어 필수 취재도구의 하나였습니다.

반세기 동안 자동차 운전을 하며 각종 사고도 많았습니다. 언론계에 현역으로 있을 때엔, 웬만한 경미한 교통 위반은 자동차에 달고 다닌 언론사 깃발 덕으로 현장 훈방조치로 끝날 때도 있었으나, 경찰서에 출두까지 한 인사사고도 두 번 있었습니다. 국내 자동차보험 사업이 활발한 때는 아니었지만, 미국 본사에서 가입한 자동차 상해보험 덕택으로 무사히 해결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지금처럼 보급되어 있지 않은 때에 운전면허증을 소지하여 주말에 직장 차를 이용해 가족들과 근거리 여행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합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긴 후, 휴가를 이용해 부산, 경주 등 경승지를 3박4일로 돌아다닌 것도 생각납니다. 10여 년 전에 80을 넘은 대학 선배 세 분과 렌터카로 2박3일 국내 여행을 두 번 했던 것도 지금으로서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선에서 다방을 찾고 있는 우리 늙은이 일행을 길 가던 젊은이들이 신기한 눈으로 보며 “직접 운전해 오셨어요?”하며 놀라던 표정, 영월의 조선조 비극 주인공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가 강 건너 보이는 모텔 마당에서 10월의 청명한 달빛 아래 아이들처럼 뛰어놀던 선배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한 분의 부음은 받았지만 나머지 두 분의 연락이 두절된 지금의 환경이 한없이 슬픕니다.

젊은 시절 지금처럼 유원지가 곳곳에 개발되기 전에, 시설이 지금처럼 훌륭하지 않았던 유원지를 가족과 함께 찾아다니곤 했지요. 얼마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집사람을 옆자리에 앉히고 즐겁게 운전하던 그때를 생각하며 스스로 한 가닥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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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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