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잠 못 이루는 밤 [신현덕]

 

세계의 잠 못 이루는 밤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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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잠 못 이루는 밤

2018.08.10

올해 처음으로 아침 최저 기온이 30도가 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20여 년 전 중동에 갔을 때도, 여행사가 일정을 잘 짠 덕분인지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았습니다. 최근 국내 많은 지역의 열대야 지속일수가 사상 최장을 기록했습니다. 며칠째 열대야에 시달리다 보니 머리가 멍합니다. 잠자고 일어나면, 얼굴은 부석부석하고, 눈이 휑해집니다.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 밤새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보면 잠도 설칩니다. 요즘은 몸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집 앞 화단도 폭염 피해를 입었습니다. 상추는 모두 말랐고, 오이도 열매가 맺질 않습니다. 방울토마토의 열매는 아주 작습니다. 봉선화는 아예 몸을 늘어뜨려 바닥에 누웠습니다. 부랴부랴 물을 퍼부어 줄기를 세웠습니다만 꽃은 없습니다. 고추도 힘없이 늘어진 채 한 개가 힘겹게 익었습니다. 그나마 가지가 고열에 견디는 능력이 있나 봅니다. 6개를 땄습니다. 이러니 농민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정부도 부랴부랴 가정 전기료를 한시적으로 인하, 위기 극복에 도움을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볼 일입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냉방기를 생활하는데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이 나라 저 나라 뉴스를 검색하며 밤늦게까지 보내곤 합니다. 이상기후 소식이 참 많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록이라는 뉴스가 넘칩니다. 온열질환으로 숨진 사람 수도 늘고 있어 걱정입니다. 특히 희생자들이 65세 이상이라는 뉴스에는 은근히 겁도 납니다. 며칠 전 음식점에 저녁거리를 포장하러 갔다가 나이 지긋한 종업원이 필자를 “어르신”이라고 부를 때 화들짝 놀랐습니다.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계산을 하고 나왔습니다. 아마 제 얼굴이 더위에 더욱 찌들었나 봅니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세계 기상이 정말 큰 이변입니다. 남극과 북극, 알프스, 그린란드 등의 빙하 온도가 1~3도 올랐습니다. 캐나다 동부 퀘벡주 인근에서 지난달 초순에만도 70명이 넘게 숨졌는데, 희생자 대부분이 65세 이상입니다. 수도 오타와는 47도를 기록했습니다. 의료진은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냉방기가 없는 건물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기상관계자는 제트기류가 평소보다 더 북쪽까지 영향을 미치며, 5,6월 강수량이 예년보다 적어 대지가 빨리 더워진 결과라고 합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 지역은 예년보다 높은 기온에 전기마저 단절돼 지옥 같은 여름을 보냅니다. 유럽의 피서지로 알려진 이곳의 높은 온도에 관광객마저도 끊겼습니다.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산림을 태웁니다. LA교외 지역은 48.9도를 기록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래스 캠퍼스도 79년 만에 처음으로 43.9도를 넘은 뒤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전기 수요 폭증 때문에 3만 가구 이상에 전기 공급이 멈췄습니다. 한 우편배달원은 냉방기가 없는 트럭을 몰고 가다 숨졌습니다. 온실가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나 봅니다. 산불은 스웨덴, 스페인에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계기상기구는 1931년 튀니지 케빌리에서 관측된 55도 기록이 금년 알제리에서 깨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는 지난 8일 최악의 겨울 가뭄에 대비해 4억3000만 달러(한화 약 4,800억원)의 긴급구호자금을 편성했습니다. 호주 농산물의 4분의 1 이상을 생산하는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닥쳤습니다. 사진 속 소들이 삐쩍 말라 곧 쓰러질 것 같습니다. 시드니와 멜버른을 잇는 고속도로는 녹아내렸습니다. 가장 추워야 할 때인 요즘(한겨울) 시드니의 기온이 영상 26도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강과 호수가 말라 2차 세계대전 때 투하한 불발탄이 속속 드러납니다. 경찰은 불발탄이 고열로 폭발할까 주민을 대피시키고 제거했습니다. 기온이 40도가 넘고 비도 오지 않아 라인강은 수심이 채 1미터도 안 돼 수운(水運)이 중단된 상탭니다. 고온 스트레스에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변화해 갈까를 두고 토론이 한창입니다. 이웃 일본도 고온 기록이 경신되고, 중국의 신(新) 4대 화로(火爐)라 불리는 충칭(重慶) 항저우(杭州) 등의 최고기온이 매일 상승하는 등 아시아 지역도 열기가 식을 줄 모릅니다.

기상학자들은 탄산가스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자동차와 건물 냉방기 등이 내뿜는 열기의 악순환으로 서울도 더위가 눅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평상에 모여 수박화채 만들어 먹진 못하더라도 한마음으로 이 더위를 건강하게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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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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