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건설현장 르포


폭염 속 건설현장 르포


1시간마다 15분 휴식? 

50도 넘는 건설현장 가보니…


전혀 지켜지지 않는 ‘의무 휴식시간’

“9층에서 작업하는데 휴게공간은 1층”


   햇볕에 달궈진 콘크리트 위 온도는 수은주의 측정 한도인 50도를 가리켰다. 


금세 옷이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3일 오후 1시경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은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열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근로자 40여 명은 공사 자재를 어깨에 이고 나르거나 레미콘을 거푸집에 부으며 쉼 없이 움직였다. 30여 m 떨어진 그늘막에서 휴식을 취하는 근로자는 아무도 없었다. “열사병 예방을 위해 1시간마다 15분 이상 쉬어야 합니다”라는 공사장 곳곳의 현수막이 무색했다.




동영상

https://youtu.be/AqPDgLA22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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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지켜지지 않는 ‘의무 휴식시간’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와 함께 해당 현장을 점검한 결과 근로자 40여 명 중 현장에 설치된 ‘무더위 쉼터’ 4곳을 이용한 사람은 6명뿐이었다. 특히 콘크리트 타설 근로자들은 일손을 잠시도 놓지 못했다. 레미콘을 1초당 10㎏씩 쏟아내는 차량이 10대 이상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건설 근로자처럼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이들에겐 적절한 휴식시간과 그늘로 된 휴게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긴 사업주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처벌이 무거운 이유는 건설현장에서 폭염으로 숨지는 근로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4~2017년 산업현장에서 열사병이나 일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숨진 4명은 모두 건설 근로자였다.


하지만 건설사 상당수는 이 규정을 무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권고한 휴식시간(폭염경보 시 1시간마다 15분 휴식)을 일일이 지키면 완공과 분양 등 후속 일정에 차질이 생겨 손해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취재팀이 찾은 현장사무소 안에는 타워크레인 전복을 막기 위한 풍속 감시계만 있을 뿐 현장의 기온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시스템은 없었다. 남궁태 건설산업노조 경기남부지부장은 “결국 건설사는 근로자가 폭염으로 쓰러지는 것보다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공사기한이 늘어나는 걸 더 우려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9층에서 작업하는데 휴게공간은 1층”

6일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한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선 건물 외벽에 대리석을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9층 높이 비계(飛階)에서 작업하는 석공의 목덜미에 강한 햇볕이 내리쬈다. 건물 안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먼지가 가득했다. 한 석공은 “1층에 선풍기를 설치한 휴게공간이 있지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시간이 없어 그냥 여기(고층)서 쉰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이날 마곡지구 일대 오피스텔 건설현장 10곳을 둘러보니 작업장 가까이에 휴게공간을 만든 현장은 단 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8곳 중 5곳엔 휴게공간이 아예 없었고, 3곳의 휴게공간은 작업장과 멀어 근로자가 이용하기 어려웠다. 탈의실이 멀어 길가에서 바지를 갈아입는 근로자도 있었다. 휴게공간이 없는 현장에서 일하는 서모 씨(56)는 “현장소장이 안 보는 곳에서 잠깐씩 더위를 식히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폭염이 지속되면 지진처럼 ‘국가재난’으로 보고 공사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협의 중이다. 다만 민간 건설공사의 경우 공공부문과 달리 공사기한 연장을 강요하기 어려운 만큼 ‘폭염경보 시 1시간마다 15분 휴식’을 법령에 못 박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성=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조소진 인턴기자 고려대 북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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