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2500년 전 두레박 [신아연]


스마트폰과 2500년 전 두레박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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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2500년 전 두레박

2018.07.23

2년 전에 개통한 휴대폰이 이번 달로 약정 만료가 되었다. 다음 달부터는 단말기 사용료를 뺀 낮은 통신 요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한편에선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약정 기간 만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휴대폰으로 교체하지 않을 수 없도록 기기의 수명을 2년 언저리로 교묘하게 조작해 둔 것 같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조짐은 배터리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 자판이 잘 눌리지 않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내게 전화기를 바꾸는 것은 스트레스다. 돈 때문이 아니라 새 기기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다. ‘무려’ 2년에 걸쳐 겨우 사용법을 익혔는데 ‘그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막막한 것이다. 2년 전 휴대폰을 개통하면서 어느 매체에 기고했던 풍경이 새삼 떠오른다.

대리점에 들어서니 70세가 넘은 어르신 한 분이 막 개통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다.

“단단히 일러줘야 혀. 한두 번 가르쳐 줘서 알아먹을 것 같지 않응게.”

보통 전화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를 것이란 짐작이 앞섰던 듯, 어르신의 태도는 결연하기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에서부터 막혔다. 어르신은 스마트폰의 기기묘묘한 세계에 입문도 하기 전에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며칠 후 그 어르신을 대리점에서 다시 만났다. 여전히 휴대폰 기능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점입가경으로 치달아 급기야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사람이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기계 작동이 끼어들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고 그로 인해 본성을 해치게 된다는 장자의 말이 생각났다.

『장자』천지편에 이런 우화가 나온다.

어느 노인이 밭에 물을 주느라 끙끙거리며 애를 쓰지만 도무지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한 젊은이가 “여기 기계가 있는데 한번 써 보시지요.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하루에 백 이랑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지요.”라고 권했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요?”

“이른바 두레박이라는 건데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물 긷는 기계이지요. 이것으로 우물의 물을 끌어 올리면 그 빠르기가 마치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예끼, 이 사람. 내가 소싯적에 스승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소. 기계가 있으면 그것을 쓰는 일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법이라고. 기계에 사로잡히면 순진하고 결백한 본래의 마음이 없어지게 되어 뭔가를 꾀하게 되고 그런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정서가 불안해진다고 했소. 그러면서 스승은 정신과 본성이 들뜨고 정서가 안정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는 법이라 하셨소. 내가 두레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도를 거스르는 게 부끄러워서 쓰지 않을 뿐이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는 자신의 경솔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얘기인데, 기계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을 2,500년 전에, 기껏 두레박을 두고 기계 운운한 것에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현대 사회에 적용해 보자면 자동차나 컴퓨터, 스마트 폰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무엇보다 스마트 폰의 편리성으로 인해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자기 것 하나밖에 없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기계 의존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화 속 노인처럼 도를 거스를까 두려워하기는 고사하고 일상생활에서조차 바보가 되어가는 지경이랄 밖에. 자동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탓에 이른바 ‘길치’가 태반이고 노래방 기기로 인해 외울 수 있는 노랫말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18번’ 가사도 헷갈린다며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많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장만한 그 어르신은 대리점 직원의 도움을 받아가며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외워서’ 입력시켰는데, 이미 기심(機心)에 사로잡혀 사는 내게는 그분의 전화번호 외우는 능력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어르신 역시 스마트폰에 익숙해질수록 암기하던 전화번호를 기억 속에서 지워갈 것이다.

조만간 나도 새 휴대폰 사용법을 익혀야 할 불길한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2년 전의 그 어르신과 내 모습이 겹쳐진다. 장자는 인간이 기계에 매이는 것은 무익함을 넘어 유해하기조차 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장자의 말이 진리로 다가온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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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아연

이대 철학과를 나와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 기자를 지내고, 현재는 자유칼럼그룹과 자생한방병원 등에 기고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생명소설『강치의 바다』 장편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를 비롯, 『내 안에 개있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마르지 않는 붓(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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