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닮아 슬픈 집


[한은화의 생활건축]

할머니를 닮아 슬픈 집


  아직 가본 적 없다면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그리고 되도록 이 검은 벽돌집을 마음속에 점처럼 새겼으면 한다. 2012년 문 연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사진)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담긴 곳이다. 서울 성산동 성미산 자락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았다. 

  

집은 집주인을 닮는다는데 이 건물만큼 닮은 곳도 드물다. 평생 어디에도 깃들지 못했던 할머니들의 삶이 집 짓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투영됐다. 원래 서대문 독립공원에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독립운동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모금액으로 낡디낡은 2층 집을 샀다. 규모는 6분의 1로 줄어들었다. 전시할 것은 많고, 집은 작고, 고칠 돈도 부족했다. 

  

프로젝트에 당선된 젊은 건축가 전숙희·장영철(와이즈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의 해법은 탁월했다. 옛집에 깃든 세월을 건축 재료로 활용했다. 나무 패널을 뜯어내자 드러난 계단실의 거친 시멘트 벽돌, 집 뒤 옹벽의 빗물 자국도 스토리텔링으로 엮었다. 그렇게 공간 전체가 말하는 ‘내러티브 박물관’이 탄생했다. 


건축가는 컨셉트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한 소녀의 여정이다. 아이가 작은 문 앞에 서 있다. 실제 박물관의 입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로비 대신, 험한 여정이 기다린다. 집 뒤편, 쇄석이 깔린 좁은 길을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야 한다. 군홧발 소리를 들으며 걸어 도착한 곳은 위안소다. 이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갔다 다시 1층으로, 집안 곳곳을 거닐며 소녀의 삶을 체험하게 했다. 집은 작지만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우연히 입구에서 만나 여정을 함께한 대만 여행객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이 슬픈 역사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허스토리’도 최근 개봉했다. 영화 속 박순녀 할머니(예수정 분)가 일본 법정에서 외치던 목소리는 명징했다. “내 살아 있는 거 무섭제!” 

  

할머니들은 살아 있는 증거다. 하지만 집을 지을 때만 해도 66명이었던 위안부 피해자는 지난 1일 김복득 할머니의 별세로, 27명으로 줄었다. 우리는 이대로 소녀의 여정을, 할머니의 목소리를 잊고 말 것인가. 성미산 자락의 작은 집은 오늘도 외치고 있다.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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